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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산악회

[1952회] 4대강 종주, ‘한강나루길’ 산행기

by 출판N산악 20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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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 4대강 종주, ‘한강나루길산행기

 

 주요 코스 : 남양주시 삼패지구 한강공원(‘한강나루길시점 겸 미음나루길’) 팔당역(‘미음나루길종점 및 정약용길(마재옛길)’ 시점) 팔당댐 봉안터널 능내삼거리능내1리 연꽃 체험마을마재마을 입구(‘한강나루길직진, ‘정약용길(마재옛길)’ 우측 겸 다산길’)

다산 정약용 유적지 실학박물관 마재마을 안내판(‘정약용길(마재옛길)’다산길갈림길) 다산 정약용 유적지 입구 버스정류장(‘한강나루길정약용길(마재옛길)’ 합류 지점, 이후 동일한 길) 다산쉼터 10’ 운길산역

 

 산행 일시 : 2021522일 오전 9오후 340(6시간 40분 산행)

 날씨 현황(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 맑음. 온도(1424)

 

 참석 인원 : 김옥영, 김현호, 김호중, 박성원, 박찬영, 부길만, 이미래, 이정수, 이정일, 임순재, 장호진, 채호기, 최태경 (13)

 안내자 : 이정일

 

 상세시간

08:00 합정역 2번 출입구 김현호, 김호중, 박성원, 이미래, 채호기, 최태경

08:15 반포대교 남단 박찬영, 이정일

08:30 천호역 1번 출입구 김옥영, 부길만, 이정수, 임순재, 장호진

09:12 남양주시 삼패지구 한강공원 안내도

09:12 ‘한강나루길시점 종점 16.7km.

09:28 ‘한강나루길시점 1.0km, 종점 15.7km.

09:44 ‘한강나루길시점 2.1km, 종점 14.6km.

09:52 ‘한강나루길시점 2.9km, 종점 13.8km.

09:55 ‘한강나루길시점 3.1km, 종점 13.6km.

09:58 ‘한강나루길시점 3.4km, 종점 13.3km.

09:59 ‘한강나루길시점 3.5km, 종점 13.2km.

10:39 ~ 10:49 팔당대교. 자마등 쉼터.

11:11 팔당2, ‘다산문화의 거리건널목. 봉안터널 방향의 자전거길로 나간다.

11:13 ‘한강나루길시점 8.3km, 종점 8.4km.

11:47 팔당역(‘미음나루길종점이자 정약용길(마재옛길)’ 시점)

11:47 봉안터널 입구

11:51 봉안터널 출구

11:52 폐철교 및 폐철도 보존 지점.

12:59 ~ 12:14 중식 - 최태경, 이정수, 박찬영, 박성원, 김옥영, 이미래, 장호진, 김호중, 채호기

12:24 능내삼거리능내1리 연꽃 체험마을마재마을 입구

12:24 ‘다산길시점. 종점 3.25km.

12:27 ~ 12:47 능내1리 체험마을에서 운영하는 매점

13:23 ~ 13:53 정약용 생가

13:53 ~ 14:13 실학박물관

14:23 마재마을 안내판(좌측으로 가면 다산길 종점, 직진하면 운길산역 방향)

14:50 ‘한강나루길시점 13.6km, 종점 3.1km.

15:40 운길산역(‘한강나루길정약용길(마재옛길)’ 종점)

 

15:40 ~ 17:00 콩마을 장어

 

17:15 운길산역(2번 출입구) 탑승 해산.

 

1. ‘한강나루길’, ‘다산길’, ‘미음나루길’, ‘정약용길(마재옛길)’ 소개

걷기 길은 건강을 위해서 많은 분들이 걷고 또 걷는다. 2007년 제주도 올레길이 처음으로 걷기 길로 조성되고 알려지더니 서울의 둘레길로 일반화되었다. 이제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각 지역의 특색에 맞춰 올레길’, ‘둘레길’, ‘누리길’, ‘나루길’, ‘남파랑길등 약 20여 종류 이상의 다양한 명칭으로 조성되어 있다. 도보여행 및 건강증진을 위해 조성된 길은 동기 부여를 위해 스탬프를 찍게 하거나 앱을 통해 인증 받도록 하고 있기도 한다.

걷기 길이 서울에 서울둘레길이 있듯이 경기도에는 경기 옛길이 있다. 남양주시에도 걷기 길이 있는데, 모두 13개 코스로 조성해 놓았다. 13개 코스 중에서 제1코스가 바로 한강나루길이고, 2코스가 다산길이다.

 

[‘한강나루길’]

남양주시의 사이트에는 한강나루길을 남양주시 삼패지구 한강공원에서 팔당역, 팔당댐, 능내리를 지나 운길산역까지 한강과 북한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팔당부터 13Km나 이어지는 중앙선 옛 철로가 있는 봉안터널은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하며, 폐철로를 자전거도로와 걷기 길로 조성한 한강나루길코스는 한강과 팔당호의 풍광과 평탄한 코스여서 누구나 부담없이 걸을 수 있다고 한다.

한강나루길은 미음나루에서 팔당역까지는 경기 옛길미음나루길과 겹치는 코스이며, 팔당역부터 운길산역까지는 경기 옛길정약용길(마재옛길)’과 일부 구간이 동일한 코스이다.

한강나루길은 시점의 이정표에는 운길산역까지 16.7km로 되어있다. 시간은 휴식 포함 약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예측한다.

 

[‘다산길’]

남양주시의 사이트에는 다산길을 능내삼거리에서 마재마을 연꽃호수를 거쳐 실학박물관, 다산유적지까지 이어진 후 능내1리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강변길과 호숫길숲길을 비롯해 시골마을길, 야트막한 산길이 이어지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팔당호변 옛 소내나루터에는 황포돛배가 정박해 있어 조선시대 포구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산 유적지, 경기도 실학박물관, 연꽃체험마을 등 문화역사체험공간이 들어서 있다.

‘한강나루길’을 걷다보면 새로운 명칭의 ‘걷기 길’이 나온다. 삼패지구에서 팔당역까지는 ‘미음나루길’이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되고, 팔당역부터 운길산역까지는 ‘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미음나루길’ ‘정약용길(마재옛길)’ ‘경기 옛길’ 6개 길 중 ‘평해길’의 일부 구간이다.

 

[경기 옛길]

경기 옛길은 경기 옛길 사이트(https://ggcr.kr/)에서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원형을 밝혀 지역의 문화유산을 도보길로 연결한 새로운 형태의 역사문화탐방로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의 문화유산과 민담설화지명유래와 같은 스토리텔링이 곳곳에 녹아있으며, 그동안 점으로 산재되어 소외되었던 문화유산을 선으로 연결하여 길을 걸으며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기 옛길은 삼남길, 의주길, 영남길, 평해길, 경흥길, 강화길 등 6개 코스가 있다. 이중 평해길은 제2길인 미음나루길과 제3길인 정약용길(마재옛길)’을 포함한 10길까지 조성해 놓았다.

 

[‘미음나루길’]

경기 옛길 사이트(https://ggcr.kr/)에서 제2미음나루길을 수려한 한강풍경과 어우러진 인문지성의 길로 표현하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한강풍경이 가장 수려한 곳으로 여겨졌으며, 한강을 오가던 배들의 중간 쉼터였던 곳으로 지금도 그 터가 남아있다고 한다. 또한 이 일대는 조선시대 지성문화의 다양성이 집약된 석실서원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여 조선시대 지성인들의 요람이자 활동지였던 길을 걸으며, 한강 경관을 느껴볼 수 있다고 한다.

 

미음나루에서 팔당역까지 10.9km이며, 3시간이 소요된다.

 

[‘정약용길(마재옛길)’]

경기 옛길 사이트(https://ggcr.kr/)에서 제3정약용길(마재옛길)’은 마음으로 즐기는 아름다운 경관, 상심낙사(賞心樂事)의 길이라고 설명한다. 이 길에서는 팔당댐을 시작으로 실학박물관, 다산생태공원, 능내리를 지나 운길산역까지 이어져 한강의 정취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산 정약용의 삶의 공간이었던 고향 마재마을을 거닐며, 그의 마음을 느껴보기길 원한다.

 

팔당역부터 운길산역까지 12.9km이며, 4시간이 소요된다.

 

 

2. 4대 종주, ‘한강나루길산행의 의미

본 산악회에서 2019119일 경기도 김포시 대명항에서 출발한 평화누리길이 총 28회에 걸쳐 20215417일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종주하였다. 평화누리길은 기간으로 보면 24개월, 거리로는 약 550km의 대장정의 걷는 길이었다.

 

평화누리길은 DMZ 남방한계선에서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이다. 달리 표현하면 남한의 입장에서는 최북단의 걷는 길이다. 이 누리길은 경기도에는 경기관광공사가 주관하고 12개 코스를 조성해 놓아 이정표를 보고 따라가면 누구나 쉽게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었으나, 강원도의 누리길은 일부 구간이 완전히 조성되지 않아 신경을 많이 쓰면서 걸어야 했었다.

 

24개월의 오랜 동안 매월 3번째 토요일은 평화누리길을 걷는 것으로 인식된 것을 넘어 관성의 법칙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평화누리길은 일반적인 정기토요산행보다 참석자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201912개월 동안 연인원 154, 202012개월 동안 연인원 139, 20214개월 동안 연인원 56명이 참석하여 전체 연인원 참석은 349명이었으며 월평균으로는 12~13명이 참석할 정도로 매우 인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20202월부터 창궐한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었다면 더 많은 인원이 참석하였을 것으로 장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 중에는 출판이라는 공감대 형성으로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새롭게 개방된 길에서 풍광을 즐기면서 건강을 증진하고 친목도 도모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화누리길은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걷는 길이었고, 새롭게 개방된 길도 있었으므로 자연의 훼손이 전혀 없이 자연 그대로 모습을 간직한 곳이 많았던 길이었다. 산악회이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평화누리길을 종주하고 새로운 걷기 길을 계획하였다. 평화누리길은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의무적 사명감으로 강력하게 실천하였던 본 산악회 이정일 고문께 많은 음덕을 받았었다. 이정일 고문님께 감사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또 민망하고 미안하게 의지해야 했다. 이정일 고문님께 색다르고 의미있는 걷기 길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이고문님께서 오랫동안 고민하여 발안하신 길이 4대강(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을 종주하는 걷기 길이었다. 많은 회원이 4대강 종주 걷기 길을 공감하고 참석하고자 하는 의지가 높아 첫 번째 코스로 한강누리길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물론 평화누리길과 마찬가지로 4대강 종주 걷기 길또한 매월 3번째 토요일에 시행하되, 첫 번째 달이자 이번 달인 20215월에만 부득이하게 4번째 토요일에 실행하게 되었다.

 

본 산악회 회원은 매일 보는 것이 한강이고 한강에 대해 매우 잘 알고 계시지만 산행기를 작성하는 입장에서 한강에 대해 기록하는 것입니다. 양해바랍니다.

 

[한강]

한강이라는 명칭은 우리말 '한가람'에서 비롯하였다. 옛말에서 '''', '한창인'을 뜻하는 말이며, 가람은 강을 가리킨다. '큰 강'이라는 뜻. 그래서 한자 표기의 ''은 음차일 뿐 중국과는 관계가 없다. 한강은 삼국시대 초기까지는 '대수(帶水)'라 불리었고,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아리수(阿利水)'라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서는 '욱리하(郁利河)'라 불렀다. 삼국사기지리지에는 '한산하(漢山河)' 또는 '북독(北瀆)'이라 표기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강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시점은 백제가 중국의 동진과 교류하기 시작한 즈음인데, 그때부터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이라 불렀다 전해진다.

한강의 발원지는 검룡소로 1987년 국립지리원(현 국토지리정보원, https://www.ngii.go.kr/kor/main.do) 도상 실측을 통해 한강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하천관리지리정보시스템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국토지리정보원 발행의 지형도에서 한강의 법정 하구인 유도산정으로부터 남북으로 그은 직선에서 가장 거리가 먼 발원지를 곡선자로 계측한 결과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산(1,418m) 북쪽 계곡, 검룡소를 우통수보다 27상류임을 확인 "한강의 발원지"로 공인하였다(http://river.go.kr/WebForm/sub_02/sub_02_03.aspx). 태백시청은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라고 홍보하고 있다(https://tour.taebaek.go.kr/tour/tour/tour_clear/tour_clear_springhead).

북한강(강원도 회양군)과 남한강이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만나 서울특별시를 통과해 김포 반도에서 황해로 들어간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폭이나 유역이 비등하지만, 강의 원류는 언제까지나 가장 긴 흐름을 기준으로 하므로 한강의 원류는 남한강이다.

대한민국의 국가 1급 하천인 한강은 경기도,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충청북도 북부, 강원도 영서 주민들은 이 강 또는 지류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한강은 길이가 494km이고, 한반도 전체에서 네 번째(압록강, 두만강, 낙동강, 한강 순)로 길며 남한에서는 두 번째로 길다. 유량으로 보면 한반도에서 가장 많고, 유역면적으로는 35,770km²로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 매우 큰 강이다.

한강 본류는 구간에 따라서 명칭이 달라진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충청북도 단양군에 이르는 구간은 남한강, 강원도 영월군의 구간은 동강, 강원도 정선군의 구간은 조양강, 그보다 상류의 태백시 구간은 골지천 등으로 불린다.

한강의 자전거도로는 아라뱃길 합류점부터 충주댐까지 있으며 주로 국토 종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북단 자전거도로와 남단 자전거도로가 있다.

 

 

3. 4대 종주, ‘한강나루길산행기

먼저 한강나루길’, ‘다산길’, ‘미음나루길’, ‘정약용길(마재옛길)’ 등의 코스를 이해시키고 기록하고자 한다. 사진으로 보면 더 쉽게 이해되리라 믿는다.

빨간 색 - ‘한강나루길’ (남양주시 걷기 길)

분홍 색 - ‘다산길’ (남양주시 걷기 길)

초록 색 - ‘미음나루길’ (경기 옛길 중 평해길)

파란 색 - ‘정약용길(마재옛길)’ (경기 옛길 중 평해길)

 

 

1. ‘한강나루길미음나루길과 겹치는 구간 - ‘한강나루길을 기록하면서 미음나루에서 팔당역까지의 미음나루길도 함께 기록하겠다.

2. ‘한강나루길정약용길(마재옛길)’과 겹치는 구간 - ‘한강나루길을 기록하면서 팔당역부터 운길산역까지의 정약용길(마재옛길)’도 함께 기록한다.

3. ‘한강나루길을 진행하다 다산길을 추가로 산행 - 능내삼거리에서 운길산역으로 직행하면 한강나루길이고 마재마을(정약용 유적지)로 들어갔다 나오는 길이 다산길이다. ‘다산길도 산행하였으므로 이 길도 기록한다.

4. ‘다산길정약용길(마재옛길)’과 겹치는 구간 - ‘다산길을 기록하면서 정약용길(마재옛길)’도 기록한다.

 

한강나루길은 남양주시 한강공원 삼패지구가 시점이고 운길산역이 종점이다. 거리는 삼패지구 시민공원에 설치된 이정표에는 운길산역까지 16.7km로 되어있다.

 

남양주시 삼패지구의 삼패란 단어가 생소하다. 지명이름에 숫자가 들어간 곳은 있어도 자가 들어간 곳은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를 찾아보니 한자로 자였다. 한자를 보고 남양주문화원에 들어가 삼패동의 유래를 알게 되니 이해가 됐다.

 

삼패동은 김식(金湜), 김육(金堉), 김좌명(金佐明) 등 청풍김씨의 신도비가 3기가 있기 때문에 삼패(三牌)동이다. 일패, 이패동 역시 각각 비석이 한 기, 두 기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삼패동은 조선시대부터 한말까지 양주군 금촌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441일 금촌면 삼패리와 사패리의 일부, 와공면의 석실리 일부를 병합하여 삼패리라 하고 미금면에 속하게 되었다. 198911일 미금시로 승격되면서 삼패동이 되었다가 현재는 남양주시의 행정동인 양정동에 편입되었다.

'한강나루길' 시점에 있는 남양주시 한강공원 삼패지구 안내도

 

오전 9시 정각, 버스는 삼패지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한강변으로 다가가니 꽃들이 만발해있다. 보기 좋은 진한 청색의 꽃이 삼패지구를 물들이고 있다. 부드럽고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꽃 이름도 모르지만 일단 핸드폰 사진부터 찍었다. 진한 청색 꽃밭에 매우 빨간 색의 꽃 한 송이도 있어 이 또한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니 진한 청색의 꽃은 수레국화이고 빨간 색의 꽃은 양귀비라고 장호진 대표께서 답해주신다. 장대표께서는 은근히 산이면 산, 나무면 나무, 꽃이면 꽃에 대해 많이도 알고 계셨다. 전에는 이정수 감사님께 생강나무를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장호진 대표님을 통해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청초하고 부드러운 수레국화와 붉디 붉은 이쁜 양귀비를 보면 앞으로 장호진 대표님을 연상하게 되리리......

수레국화. 청순한 맑음과 청아한 밝음으로 보기만 해도 기쁨을 줄 것 같은 수레국화는 그 이미지 답게 꽃말이 행복감이라 한다. 독일의 국화(國花)이기도 한 수레국화는 유럽 동부와 남부 원산이며, 국내에서는 꽃양귀비와 함께 관상용으로 많이 심는다고 한다.
꽃양귀비. 꽃 이름은 중국의 절세미인이었던 양귀비를 빗대어 이름이 지어진 들꽃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우미인(虞美人), 우미인초(虞美人草), 진뻬이화(錦被花), 리춘화(麗春花)라고 하고, 북한에서는 애기아편꽃으로 불리며, 우리나라에서는 물감양귀비, 개양귀비로 알려져 있다. 매년 4월 중순부터 피며, 5~6 월에 절정에 이른다. 꽃은 가지 끝에 1송이씩 달리고, 피기 전에는 밑을 향하다가 피기 시작하면 위로 향한다. 꽃도 비교적 크고 꽃의 색깔도 다양하고 화려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상용으로 심는다.

 

오전 9시라 날씨와 온도가 걷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었다. 오늘따라 첫 눈에 수레국화와 양귀비를 보아서인지 인증사진에서와 같이 회원들의 표정에는 힘이 넘친다. 삼패지구에서 출발하는 발걸음은 경쾌하고 마음은 상쾌하였으리라.....

 

삼패지구를 출발한 후, 1.0km를 걸으면 한강나루길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1.0km를 오는 동안 경기문화재단 경기옛길센터에서 설치해 놓은 평구마을안내판을 만나게 되고, ‘석실마을이야기 안내판을 보게 된다.

남양주시 삼패동은 조선시대 평구역이 있었던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 옛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는지 6번국도인 경강로와 경의중앙선 철도가 지나는 곳이네요. 평구역은 기차역이 아니라 공무를 수행하는 관원들에게 말을 제공했던 곳입니다. 지금도 삼패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역촌과 평구마을이 있어서 지명으로나마 이 일대가 역마을이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평구역은 한양에서 강원도로 가는 길 도처에 있었던 역들을 총괄하는 평구도의 본역이었습니다. 그러니 역의 규모가 상당히 컸지요. 책임자도 역승(驛丞)이 아니라 한 등급 높은 찰방(察訪)이라는 관원이 주재하고 있었고, 역의 관리인, 남녀 노비, 역마도 다른 역에 비해 많았습니다. 또한 평구역에서는 평구도에 속한 역들에 배치될 말을 기르고 훈련시키는 역할도 하였지요. 현재 덕소초등학교 앞에는 말무더미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평구역에서 기르던 말이 죽으면 묻어주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구한말까지 교통과 통신을 책임지던 역마제도는 갑오개혁 직후인 1896 년에 고종의 명으로 폐지되지요. 당연히 이때 평구역도 사라졌고요. 그 후 철도가 생긴 후 기차가 머무는 곳을 역이라고 했는데요, 이전 역마의 영향이었는지 기차를 철마라고 불렀던 것을 아시지요? 쇠로 된 말이란 뜻이지요. 평구마을 옆에 있는 덕소역이 바로 철마가 다니던 역입니다.

 

한강나루길시점에서 2.1km 지점에 이정표가 설치해 놓았다. 1.0km 지점과 2.1km 지점 사이에 있었던 옛날 덕소나루터에 설치된 덕소나루터안내판을 읽을 수 있었다. ‘미음나루길이정표 2개를 지난다.

덕소나루터와 원덕마을의 소개는 경기옛길 사이트의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다. 남양주시 와부읍의 읍소재지인 덕소리는 한강에 배가 오가던 시절 나루가 있었던 마을입니다. 그때의 마을은 강변에 위치해 있었지요. 예전 덕소리를 지나던 한강은 지금의 두산아파트 강변의 암반지대를 돌아 강 건너에 있는 미사리 쪽으로 물이 굽이돌았고 한솔, 진도, 현대홈타운, 삼익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강변은 큰 못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큰 못 때문에 덕소(德沼)라는 이름도 유래된 것이지요. 이 못이 있었던 강변에 덕소리 마을 중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원덕마을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경의중앙선 철도를 기준으로 강변 쪽에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곳이 원덕마을 자리이지요. 그런데 이 마을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수몰되었고, 큰 못도 유실되어 버립니다. 이 때 원덕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지대가 비교적 높은 지금의 읍사무소 일대로 거주지를 옮겼던 것이지요. 지금 원덕마을은 사라지고 없지만와부농협원덕지소처럼 옛 지명이 남아있는 곳도 보이네요. 하지만 원덕마을에 있던 덕소나루와 주막집들은 여전히 강변 지역을 지키고 있었지요. 덕소나루의 맞은편은 하남시 미사동이었는데, 모래사장도 아름다웠지만 논밭도 많아서 덕소리 주민들이 농사를 지으러 가거나, 미사리 쪽의 주민들이 덕소리에 있는 역이나 장을 이용하기 위해 이용하던 나루였습니다. 물론 장삿배와 뗏목이 머물러 가던 물길의 정류장 역할도 하였기 때문에 주막집이 많기로도 유명했습니다. 강원도 정선, 영월 떼꾼들의 기억에 의하면 그중 썩정이할머니집이란 주막이 가장 유명하였답니다.

 

한강나루길’ 2.1km 지점을 지나면 2.9km 지점에 이른다. 두 지점 사이에서 바라본 검단산은 한 달 전에 다녀와서 그런지 더 정감이 어린다. 그리고 미음나루길이정표 1개를 지난다.

검단산

 

한강나루길’ 2.9km 지점에서 약 200m를 지나면 3.1km인 지점을 만난다. 굳이 200m 간격에 이정표를 설치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찾지 못해서 이해가 안 되었다. 3.1km 지점에 미음나루길이정표도 설치해 있었다. 이 지점은 한강 하구로부터 정확히 70.0km 지점이었다.

 

한강나루길’ 3.1km 지점에서 약 300m를 지나면 3.4km인 지점을 만난다. 이 두 지점 사이에서는 미음나루길이정표가 없었다. 한강에는 콘크리트로 조형물을 만들어 놓았는데 뭔지 모르겠다.

 

한강나루길’ 3.4km 지점에서 100m를 지나면 3.5km인 지점을 만난다. 100m의 간격으로 이정표를...... 이해가 되지 않고,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인식만 심어준다.

 

한강나루길’ 3.5km 지점의 이정표를 만난 후, 팔당대교까지 한강나루길이정표를 볼 수가 없었다. 본인은 각종 이정표와 특기할 만한 사항을 사진으로 담느냐 회원을 따라가기 때문인지 팔당대교 자마등 쉼터까지 힘든 줄 모르게 도착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시간을 보니 어느덧 오전 1039분이었다. 이 두 지점 사이에서 미음나루길이정표는 모두 3개가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지점 사이에서는 스타필드 하남과 하남유니온타워가 보여 사진을 찍어 놓았고 당정섬도 찍어 놓았다.

스타필드 하남과 하남유니온타워
검단산
당정섬
팔당대교 아래에 있는 커다란 섬이 보이시나요? 당정섬이라는 하중도(河中島)이지요. 하남시가 광주군 동부면이었던 시절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던 섬마을이었기 때문에 당정리라고 불렸지요. 1915년 측량된 일제강점기의 지도를 보면, 그때부터 상당한 규모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섬마을에는 나루도 있어서 광주군과 남양주군을 오가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했답니다. 1925년 을축년 홍수 때 섬이 침수되자 마을 주민들의 일부가 인근 강변마을로 이주하기도 하였지만, 이후로도 마을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1989년부터 시행된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섬 주민 전체가 퇴거당하게 되지요. 그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지속된 골재 채취 사업으로 섬이 완전히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강에 있는 섬들은 상류에서 흘러내려온 토사가 쌓이며 새로 섬이 생기거나 있던 섬들도 점점 커지는 법입니다. 한강도 마찬가지여서 퇴적 작용이 일어나며 사라졌던 당정섬이 다시 부활하게 되지요. 200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 섬의 형태가 복원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래사장으로 되어 있다가 갈대와 수풀이 우거지며 점차 섬 모습을 갖추어 갔지요. 현재 이 섬은 당정동이라는 어엿한 동명을 가지고 있는 하남시에 속한 법정동이며 행정동인 신장2동에서 관할하고 있습니다. 비록 사람이 살지 않는 행정구역상으로만 존재하는 마을이지만, 사람 대신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더욱이 이 섬은 최근 큰고니의 도래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201-2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백조라고 부르기도 하는 새들의 안식처가 된 것이지요.

 

팔당대교 자마등 쉼터에서 약 10분간의 휴식으로 갈증을 해소하고 허기도 채우며 심신을 충전하였다. 자마등 쉼터에서 출발한 후, 12분 후에 팔당2리의 다산문화의 거리건널목을 건너 봉안터널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두 지점 사이에 팔선녀이야기안내판이 놓여져 있었다.

한강과 도보여행의 분위기에 적합한 인공조형물이 이쁘게 설치해 놓았다 .
다산문화의 거리 건널목, 건널목에 도착하기 전에 파란 신호등이라 뛸 수밖에 없었다 .

 

다산문화의 거리건널목에서 약 2분 후에 한강나루길시점 8.3km, 종점 8.4km인 이정표를 만난다. 3.5km 지점에 설치해 놓은 이정표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이정표를 설치해 놓았다. 2.9km 지점에서 3.5km 지점까지 600m 거리에 100 ~ 300m 간격으로 3개의 이정표를 설치해 놓더니 이곳에서는 너무 멀게 이정표를 설치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는 자전거 길로 걸었고, 만약 걷기 길인 팔당역 방향으로 올라가 걸었으면 이정표를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걷기 길은 팔당대교에서 팔당역 방향으로 위로 올라가 국도를 건너서 가는 코스이다.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한국관광공사에서 배포하고 있는 두루누비라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검색한 결과이다. 그리고 팔당역을 지나온 것이므로 미음나루길은 끝나고 정약용길(마재옛길)’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 이정표를 보고 오늘의 한강나루길은 절반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때가 시간으로 오전 11시 13분, 약 2시 13분을 걸었다. 운길산역까지는 약 2시간 정도 남게 된다. 점심 시간을 포함해도 약 3시간 후인 오후 2시 경에는 운길산역에 도착하리라 예상하였다.

 

한강나루길시점 8.3km 지점에서 봉안터널 입구까지는 한강나루길이정표가 없었다. 그래서 거리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8.3km 지점에서 봉안터널 입구까지 쉬지 않고 약 34분을 걸었으므로 거리를 환산하며 최소 약 2.5km 이상을 걸은 것으로 예측된다. 이 두 지점 사이에 남양주 다산길’ 1’ 비석이 남양주 다산길’ 6’까지 모두 6개가 있었고, ‘다산쉼터 1’부터 다산쉼터 7’까지 7개가 있었다.

봉안터널 입구
남양주 다산길 1비석, 1부터 6까지 6개가 설치해 있었다.
다산쉼터 7, 1부터 7까지 7개가 설치해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지점 사이에서부터는 팔당역에서 시작하는 정약용길(마재옛길)’의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예봉산 자락으로 난 벼랑길팔당댐과 팔당호안내판을 보게 된다.

예봉산 자락으로 난 벼랑길. 예봉산은 경기도 남양주시의 와부읍과 조안면에 걸쳐 있는 산입니다. 수림이 울창하여 인근 지역뿐 아니라 서울에까지 땔감을 대주던 주요 연료공급원이었지요. 요즘은 서울 근교의 등산코스로도 유명합니다. 등산로 입구는 팔당2리인 상팔당마을에 있습니다. 현재 등산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데, 정상에 오르면 검단산, 운길산과 팔당대교부터 팔당호에 이르는 한강까지 조망할 수 있어 등산객들이 즐겨 찾습니다. 평해로는 한강을 굽어보는 예봉산 자락으로 나 있었습니다. 상팔당에서 능내리로 넘어가는 길인데 잔도(棧道)가 놓여 있었지요. 잔도는 험한 벼랑에 선반처럼 달아 낸 길을 말합니다. 지금이야 6번국도인 경강로가 예봉산에 팔당1~4터널과 봉안터널을 뚫어 통행을 하고, 폐구간이 된 중앙선 철도길이 자전거길로 조성되어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도보로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지요. 물론 평해로가 지나던 험난한 길에도 다산로라는 도로가 가설되어 있습니다만 보행로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도보로 이용하기에 위험천만하기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다산로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경치는 일품이지요. 평해로를 다니던 행인들도 이 경치를 보며 가쁜 숨을 고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산로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습니다. 중앙선 철도를 건설할 때 바닥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쌓아놓은 축대이지요. 축대가 어떻게 볼거리가 될 수 있느냐고요? 그것은 이 축대에 써놓은 낙서들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 낙서들은 이곳을 지나다니던 여행객들이 수십 년에 걸쳐 남겨 놓은 것이니까요. 마치 벽화거리를 연상케 하는 낙서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팔당댐과 팔당호. 예봉산 자락인 남양주시 조안면 상팔당과 맞은편 검단산 자락인 하남시 배알미동 사이는 큰 골짜기를 이루고 있고 그 가운데로 한강이 흐릅니다. 그 상류 쪽은 남한강, 북한강, 경안천이 합류하여 흐르고 있고요. 그러니 이 골짜기는 댐을 건설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지요. 댐 상류에 엄청난 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좁은 골짜기로 내려 보냄으로써 수력발전을 할 수 있고, 홍수 때 서울의 한강 유역이 범람하는 것을 막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떠맡았으며, 수도권의 상수원을 확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애초에는 전력 생산을 위주로 하는 발전용 댐을 계획했지만 결과적으로 다목적댐으로 역할이 확장된 것입니다. 시공업체는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인 한국전력주식회사였고, 1966년 6월에 착공하여 1974년 5월에 준공하였지요. 이 댐의 건설로 남양주시, 하남시, 광주시, 양평군에 걸친 한강 유역의 지형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팔당댐 위쪽으로 팔당호라고 불리게 되는 거대한 인공호수가 생겼기 때문이지요. 이후 팔당호 주변으로 도처에 유원지가 형성되며 서울 근교의 관광지로 각광을 받게 됩니다. 그러다 2004년 팔당댐 주변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 유원지들은 각종 규제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게 되었죠. 지금도 남양주의 팔당과 능내리, 양평의 양수리와 같은 팔당호 주변의 강변마을에는 카페, 음식점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턱없이 줄어들었습니다. 또한 이들 마을 곳곳에는 놀잇배들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제 팔당호에서는 배를 띄울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 된 셈이지요.

 

 

봉안터널은 바로 옆이 팔당댐이었다. 마침 어제 내린 비로 수위를 조절하려는지 수문 1개를 열어놓고 방류를 하고 있었다. 자주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므로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놓았다.

 

봉안터널 입구에 들어서니 시원하게 느껴진다. 토요일이라 걷는 분도 많았지만 자전거를 타는 분이 더 많았다. 자전거가 우선인 줄 착각하시는 분은 비키라고 고함부터 지르며 씽씽 달리고 있었다. 입구의 사진과 터널 안 그리고 출구의 사진을 찍어 보았다. 그리고 비교해 본다.

봉안터널 입구
봉안터널 출구

 

봉안터널을 나오면 봉안교회이야기 안내판이 보이고, ‘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가 보이며, 폐철교와 폐철도를 보존해 놓은 장소도 보인다.

폐철교와 폐철도를 보존함으로써 지난 날의 추억을 되살리고,  철로가 걷기 길로 변화되는 과정을 실물로 보여주는 것 자체만으로도 깊은 의미가 있다고 느껴진다.

 

폐철교의 보존 장소에서 능내삼거리까지는 팔당댐 상류지역이다. 팔당댐 하류지역보다 온도가 좀 낮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인공 조형물이 거의 없어 전망 또한 시원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팔당댐 상류지역에서 찍은 팔당댐

 

허기를 느끼려는 시점에 이심전심인지 회원 일부가 중식을 하기 시작한다. 팔당댐 상류지점에서 한강을 조망하며 식사는 꿀맛이다. 오늘의 김밥은 유난히도 더 맛있었던 것 같다. 15분에 걸친 식사 후에 능내삼거리로 향했다. 식사 후에 팔당댐을 배경으로 사진으로 찍었다.

 

폐철교 장소에서 능내삼거리까지에 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가 4개 있었다. 그리고 남양주 다산길’ 8’남양주 다산길’ 9’ 2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다산쉼터는 또한 다산쉼터 8’다산쉼터 9’ 2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김옥영, 이미래, 장호진 회원은 중식을 마치자마자 바로 운길산역으로 향했다. 본인은 약 3분 후에 출발하고......

 

능내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이곳의 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에는 팔당댐에서 1.5km를 지나왔고, 정약용 유적지(생태공원)까지 2.2km 가야한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이곳에서부터 다산길이다.

능내삼거리. 직진 방향이 한강나루길이고, 우측으로 들어가면 능내 1리 연꽃 체험마을이자 마재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다.

 

능내삼거리의 마재마을 입구에서 이심전심으로 휴식을 취한다. 오후 1시 경이라 온도가 최고점으로 올라갔기에 더위를 실감하고 있었고 냉커피가 생각나게 하는 시점이었다. 선두에서 걷고 계신 3분의 회원께 같이 휴식을 취하려 급히 전화를 드리니 되돌아오기에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천천히 쉬면서 운길산역으로 향하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능내삼거리에서 마재마을로 향하는 입구에는 마침 이 있다. 매점 주인은 많은 수의 탐방객임에도 불구하고 정답게 우리를 맞이한다. 이 매점의 특성품은 연꽃뿌리 식혜라고 하시며, 적절한 상황판단과 감각있게 냉동실에 있는 식혜를 권한다.

능내 1 리 연꽃 체험마을임을 알려주는 안내판
매점 주인은 모자와 마스크를 써 전반적인 인상을 볼 수 없었지만 선한 눈매와 웃음 띤 안광에서 서비스의 감성을 유발한다.
능내 1리 연꽃 체험마을 매점. 허름해 보이지만 오히려 수수하게 보여 정감이 어리고, 뭔가 하나를 더 사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온정을 느끼게 한다.
매점 입구에 부착되어 있는 이 매점만의 특성품인 식혜 홍보지
이 매점에서 직접 키우고 재배하여 시품으로 내놓은 연꽃뿌리 식혜

 

이 매점에 앞에 설치되어 있는 정약용길(마재옛길)’의 이정표에는 팔당댐에서 1.6km를 왔으며, 정약용 유적지(생태공원)까지 2.1km를 가야 한다.

 

매점에서 약 20분의 휴식은 뜨거워진 몸의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하였고, 시원한 연꽃뿌리 식혜와 냉커피의 식음은 몸 깊숙이 냉정을 찾게 하였다. 게다가 회원 간의 웃음 섞인 한담은 심신을 여유롭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매점 옆에 있는 머루터널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다산길로 접어 들었다.

 

능내1리 연꽃 체험마을에서 약 200m를 지나니 다산길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 연화낭자 이야기안내판도 함께 설치해 있다.

 

다산길시점 0.2km에서 출발하면 다산길시점 0.55km인 이정표 및 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가 한 기둥에 설치해 있었다. 이 지점까지 오는 장소에는 한 영화의 한 장면을 촬영해도 무방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많이 찍었다.

 

다산길시점 0.55km에서 0.75km까지의 길은 심폐 기능을 강화시키고 심장 강화에도 도움이 되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는 피톤치드를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길이었다.

 

다산길시점 0.75km에서 0.89km까지의 거리에는 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가 1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산길시점 0.89km에서 1.08km까지는 숲이 우거져 바람은 살랑살랑 시원하게 불어오고, 탐방로는 낙엽과 부드러운 흙으로 이루어져 발걸음이 경쾌하게 느껴졌다.

다산길시점 1.08km에서 1.46km까지는 또한 우람한 나무로 그늘져 시원함을 만끽하며 걷는 길이었다. 이곳에 다산길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가 한 나무기둥에 설치되어 있다.

다산길시점 2.08km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400m를 더 가면 또 다른 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다산길시점 2.08km에서 약 4분을 걸어가면 정약용 생가가 나온다. 정약용 생가의 대청마루에 앉아 정약용의 생애와 공적을 주고받으며 한담을 나눈다.

정약용 묘
정약용 묘에서 헌배하는 회원들......

 

30분의 정약용 생가와 묘를 관람한 후, 실학박물관으로 향했다. 실학박물관에서는 약 20분에 걸쳐 관람을 하였으며 관람이 끝나고 보니 시간이 오후 213분이었다.

 

실학박물관에서 약 2분에 걸쳐 운길산역 방향으로 진행하니 다산길시점 2.35km인 이정표가 나온다.

 

다산길시점 2.35km에서 2.61km 사이에는 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 1개가 설치해 있었으며, ‘마재마을의 정약용 유적지안내판이 있었다.

마재마을의 정약용 유적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의 마재마을은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고 오랜 벼슬과 유배생활 끝에 다시 돌아와 여생을 마친 곳입니다. 남양주시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마재마을에 정약용 유적지를 조성하고 매년 10월 중순경에는 사흘 동안 축제도 거행하고 있습니다. 정약용 유적지는 다산기념관, 여유당, 문도사, 묘역, 문화의 거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산기념관은 정약용 선생의 실학정신을 배울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조성된 건물로 선생의 일대기와 삶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꾸며져 있지요. 여유당은 선생의 생가로 원래는 현재 주차장이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소실되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선생의 삶을 느낄 수 있도록 옛 여유당의 모습을 재현하여 현 위치에 복원한 것입니다. 소박한 모습이기는 해도 사랑채와 안채로 구성된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양반집의 면모를 지니고 있지요. 문도사는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실학의 선구자였던 선생의 얼을 기리고 있습니다. 기념관 앞에 조성된 문화의 거리에는 수원 화성을 축조할 때 선생이 설계하여 사용되었던 거중기와 녹로를 비롯하여 선생이 집필하신 『경세유표』와 『목민심서』에서 마음에 새길 만한 글귀가 적힌 동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유적지 인근에는 실학박물관이 건립되어 다양한 실학자들의 사상과 활약상을 배울 수 있는 많은 자료가 전시되고 있습니다. 정약용 선생이 태어나고 여생을 마친 이곳이 실학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것이지요.

 

다산길시점 2.61km에서 2.83km 사이에는 철마를 위했던 마재마을안내판이 있었다. ‘다산길시점 2.83km인 지점에서 마재성지 방향으로 약 410m를 가면 다산길종점이다. ‘정약용길(마재옛길)’ 또한 마찬가지로 다산길종점으로 가서 한강나루길과 합류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름길인 운길산역 방향으로 나아간다. 종점으로 가는 길과 지름길로 가는 길의 거리는 거의 동일할 것으로 예측된다. ‘다산길종점으로 가지 못해 우리는 능내역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장호진 회원이 능내역을 거쳐 운길산역으로 갔다. 장호진 회원이 능내역에서 찍은 사진으로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다.

철마를 위했던 마재마을. 마재마을의 지명유래에 얽힌 이야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말을 타고 넘어가던 고개가 있는 마을이어서 마재 혹은 마현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지명 전설치고는 좀 시시하지요. 하지만 약 200년 전 이 마을에 살았던 정약용 선생은 다산 시문집에서 이와는 다른 지명 유래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전 마재마을 뒤에 있는 산마루에는 쥐만한 크기의 철로 만든 말이 있었답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임란 때 왜구가 이곳의 산천이 수려하여 정기를 눌러놓기 위해 이 철마를 묻어 두었고, 이 때문에 마을에 질병과 요사스러운 일들이 발생한다고 믿었지요. 그래서 주민들은 콩과 보리를 삶아 철마에게 바치는 제사를 지냈으므로 이 마을을 마현(馬峴)이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물론 실학자였던 정약용 선생은 철마를 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내던 일은 전통적인 마을제사에서 유래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였지요. 그렇다면 200년 훨씬 이전부터 마재마을에는 제사를 지내며 모시던 철마가 있었고, 이로 인하여 마을 이름도 마재가 된 것입니다. 마을의 뒷산을 쇠말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아무튼 이 마을에 얽힌 철마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전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후손들에게 마을에 철마가 들어오면 마재를 떠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후 1956년 마재마을에는 중앙선 능내역이 들어섰고 철마라는 별명을 가진 기차가 왕래하게 되지요. 이때 정약용 선생의 후손들이 하나 둘씩 마을을 떠나기 시작하는 바람에 현재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의 우측 방향인 마재성지로 약 410m를 가면 다산길 종점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사진을 찍은 장소인 운길산역 방향으로 직행한다.
장호진 회원이 능내역 앞에서 사진을 찍어 놓아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하면서 고마운 감정도 함께 묻어난다. 이 능내역 사진으로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다.

 

다산길시점 2.83km인 지점에서 약 20분을 걸으면 정약용길(마재옛길)’ 운길산역까지 3.6km인 이정표가 있으며 다산쉼터 10’인 장소가 나온다. 그리고 남양주 다산길’ 11’도 나온다. 이 지점에서 한강나루길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이곳의 차도에는 다산 정약용유적지 입구버스정류장이 있다.

 

이 지점에서도 약 5분여의 휴식으로 한강을 조망하고 갈증도 해소한다. 휴식하는 동안 장호진 회원께 메시지가 온다. 운길산역에서 기다리고 있으며 후미 회원이 도착하는데 오래 걸리면 먼저 집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수고하셨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장호진 회원은 다른 회원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선한 마음씨로 선두 바로 뒤에서 따라가고, 힘들어도 힘든 내색하지 않으며 묵묵히 걷는 분이신데...... 아직 본 산악회의 분위기와 상황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먼저 가신다니 총무로써 미안한 감정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모두 함께 석식이라도 하였으면 좋았을 텐데......

 

다산길한강나루길합류지점에서 약 5분을 걸으면 한강나루길이정표가 나온다. 한강나루길이정표가 운길산역까지 가는 동안에 마지막 이정표였다. 그렇지만 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는 많이 설치해 놓았다. 이 구간은 한강나루길정약용길(마재옛길)’이 동일한 구간이므로 정약용길(마재옛길)’ 이정표로 운길산역까지 기록한다.

 

마지막 한강나루길이정표에서 약 1분을 걸으면 정약용길(마재옛길)’ 종점 운길산역까지 3.2km인 이정표를 만난다.

 

정약용길(마재옛길)’ 종점 운길산역까지 3.2km인 지점에서 0.8km 남았다는 이정표까지 약 2.4km 동안 이정표를 만나지 못했다. 이 길은 자전거 길과 동일하기 때문에 매우 순탄하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었다. 이 두 지점 사이에서 다산 쉼터 11’부터 다산 쉼터 16’까지 6개의 쉼터를 지나쳤으며 남양주 다산길’ 12’부터 남양주 다산길’ 16’까지 5개의 비석을 지나쳤다. 그리고 새소리에 반해 터를 잡은 조동마을안내판을 지나친다.

새소리에 반해 터를 잡은 조동마을. 남양주시의 조안리는 조안면의 면소재지입니다. 조안1리 고랭이마을과 조안2리 조동마을 등 여러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지요. 고랭이마을은 북한강변에 자리 잡은 마을로 예전 양평군 양수리로 건너다녔던 고랭이나루가 있던 마을입니다. 이에 반해 조동마을은 산지로 이루어진 지역이지요. 조동마을은 고유어로는 새울 혹은 새월마을이라 불리는데, 다음과 같은 입향전설이 전해집니다. 옛날 박씨 선조가 한양 가는 길에 이곳에서 쉬게 되었는데, 새소리가 아주 듣기 좋고 물도 맑아 가려 했던 길을 멈추고 여기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새 조(鳥) 자를 써서 '조동(鳥洞)'이라 하였다는 것이지요. 조동에서는 능내리를 거치지 않고 예봉산 등성이를 넘어 팔당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었는데 그 고개 이름도 새재[鳥嶺] 혹은 새고개라 하였으니 과연 새소리가 일품인 지역임은 분명한 모양입니다. 현재 이 산길에는 새소리명당길이라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예전 박씨 선조가 걸었던 길이니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 마을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알게 되겠지요.

 

정약용길(마재옛길)’ 종점 운길산역까지 0.8km인 지점에서 운길산역까지 가려면 자전거 길이 아닌 말틀고개로 넘어간다. 이 말틀고개로 넘어가면서 정약용길(마재옛길)’ 종점 운길산역까지 100m 단위로 이정표를 설치해 놓았다.

운길산역까지 0.2km 남았다는 이정표로 더 이상의 이정표는 없었다.

 

드디어 운길산역에 도착하였다. 이때의 시간이 정확하게 오후 340분이었다. 박찬영 감사가 미리 도착하여 콩마을 장어식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른 저녁이긴 하지만 석식을 해야 한다며 본인이 후원이 하셨다.

 

오전 9시 정각에 남양주시 한강공원 삼패지구에서 출발하고, 정약용 유적지를 관람한 후, 운길산역에 도착하니 오후 340분이었다. 시간으로 6시간 40분을 걸은 것이다. 한강나루길은 한강이라는 테마에 걷는 길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코스였다. 맑은 날씨여서 한강의 조망은 최고였으며 정약용 유적지에서 정약용의 생애와 공적을 잠시나마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기회였다.

 

한강나루길에서 뜻 깊은 의미를 굳이 찾는다면, 첫 번째로 앞으로 본 산악회에서 시행할 4대강 종주의 첫 코스였던 점이다. 그리고 이번 산행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4대강 종주로 마무리 할 때까지 많은 교훈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콩마을 장어식당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적절한 음주로 기분이 향상되었을 때 의도된 절제로 우리의 심적 아름다움은 더욱 빛났다.

 

오후 515분에 경의중앙선의 서울행 지하철을 탑승함으로서 이번 산행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박찬영 감사님!

방전된 체력을 단백질로 충분히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정일 고문님!

함께 하여 즐거웠으며, 안내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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