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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산악회

[1944회] 관악산 호암산 산행기

by 출판N산악 2022. 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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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회] 관악산 호암산 산행기

 산행 코스 : 서울대 정문 관악산공원 입구 시계탑 - 제4야영장 - 446봉 - 운동장바위 - 찬우물 - 호암산성 - 불영암, 한우물 - 신랑각시바위(사랑바위) - 호암산 - 호암산 숲길 공원. 서울둘레길 관악산 코스(사당역 ∽ 석수역) 날머리 - 갈비, 와사비 - 석수역(1호선)

 산행 일시 : 2021년 3월 27일 오후 1시 30분 ∼ 오후 5시 00분 (3시간 30분 산행)

 날씨 현황(서울 관악구 봉천동) : 비. 온도(10∼15)

 참석 인원 : 강주연, 김현호, 박성원, 부길만, 오상환 (계 5명)

 안내자 : 김현호

 상세시간

13:30 서울대정문 관악산공원 입구 시계탑

14:20 제4야영장

15:05 446봉

15:20 운동장바위

15:45 찬우물

16:05 호암산성

16:10 불영암, 한우물

16:25 신랑각시바위(사랑바위)

16:30 호암산

17:00 호암산 숲길 공원. 서울둘레길 관악산 코스(사당역 ∽ 석수역)

17:20 ∽ 18:20 갈비 – 강주연, 부길만, 오상환 1팀

17:20 ∽ 18:20 와사비 - 김현호, 박성원 2팀

18:30 석수역(1호선) 해산

1. 관악산 소개

서울대정문 관악산공원 입구의 관악산 안내도

 

 

2. 관악산 산행기

며칠 전부터 이번 주 토요일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기상청의 예보가 있었다. 본 산악회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행은 강행한다는 모토가 있기에 크게 게의치 않는다. 나부터 비가 오면 새로운 상황과 체험으로 인식하고 즐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세가 있으신 회원에게는 참석을 만류하고 싶어진다. 무리하게 참석하시다 혹시나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오히려 건강에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산행에 참석하신 회원은 자그마치 5명이 되었다. 예상 밖의 높은 참석율이다. 비가 오는 중에도 회원님의 표정에는 밝고 힘차 보인다.

이번 주 산행의 안내자는 김현호 회원님이다. 관악산공원 입구에서 김현호 안내자의 산행코스를 설명을 듣는다. 난 오늘은 비가 오고 천둥 벼락을 친다는 예보가 있기에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에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주 산행은 서울대정문 관악산공원에서 무너미고개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446봉을 거쳐 불영암에 이르고 석수역으로 하산하는 것으로 설명하신다. 그리고 앞장서 앞으로 나아가신다. 그 뒷모습이 개선장군 같이 우람한 것은 비가 오더라도 반드시 완주하겠다는 자신감으로 보였다.

비가 오니 출발하기 전에 우의 상의와 우의 하복을 덧입고 출발했다. 관악산으로 향하는 좌측은 서울대 건물이 즐비하다. 빗방울이 떨어지더라도 시야는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오히려 황사로 인한 시야보다 더 멀리 보이는 것이다. 관악산공원 입구에서 관악산 정상으로 조금 오르다보니 관악산 호수공원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며 바라본 개나리와 목련이 아름다운 표정으로 우리를 반기는 듯 하였다.

까치가 매우 가까이에 있어 사진을 찍었는데도 달아나지 않는다.
개나리와 목련

개나리를 보면 어릴 적에 자주 불렀던 동요가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아마 회원님 모두 잘 알고 계신 바로 그 노래 “봄나들이”이다.

봄나들이

https://www.youtube.com/watch?v=jzVZzY-W-94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성인이 돼서 알게 된 개나리에 대한 노래로 유명한 것은 “개나리 처녀”일 것이다. 아마 우리 회원님께서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고 잠시 감상해 보시기를 기대하며 링크해 본다.

개나리 처녀 – 작사 천지엽, 작곡 김화영 노래 최숙자 1958년

https://www.youtube.com/watch?v=lu7scJIpOlQ

개나리 우물가에 사랑 찾는 개나리 처녀

종달새가 울어 울어 이팔청춘 봄이 가네

어허야 얼씨구 타는 가슴 요놈의 봄바람아

늘어진 버들가지 잡고서 탄식해도

낭군님 아니 오고 서산에 해 지네

석양을 바라보며 한숨 짓는 개나리 처녀

소쩍새가 울어 울어 내 얼굴에 주름 지네

어허야 얼씨구 무정코나 지는 해 말 좀 해라

성황당 고개 너머 소모는 저 목동아

가는 길 멀다해도 내 품에 쉬렴아

옛 추억을 떠올리며 개나리에 대해 검색해보니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여러 가지 개나리의 전설에 대해 읽어 보시기를 바라며......

개나리 전설 1

먼 옛날 어느 마을에 찢어지게 가난한 홀어미가 개나리라는 딸과 두 명의 아들을 데리고 오막살이집에서 살았다. 어느 해 심한 가뭄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였다. 홀어미와 어린 삼남매도 양식이 떨어져 굶어죽을 지경이 되었다. 홀어미는 삯바느질이라도 해서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했지만 마을사람들은 아무도 일거리를 주지 않았다. 홀어미는 할 수 없이 거지처럼 동냥을 해서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동냥을 하던 홀어미가 병들어 눕게 되자 어린 개나리가 가족을 위해 동냥을 나갔다. 가뭄 때라 동냥도 매우 힘든 일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홀어미와 삼남매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고 서로를 꼭 껴안고는 잠이 들었다. 이튿날 마을사람들은 완전히 타버린 채 흔적만 남은 개나리네 집을 발견하였다. 굶주림에 지친 나머지 집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타죽은 홀어미와 삼남매의 슬픈 이야기다.

개나리 전설 2

먼 옛날 어느 마을에 욕심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스님이 부자를 찾아와 시주를 청했다. 그러나 부자는 '우리 집에는 개똥도 없소'라고 하면서 문전박대를 하였다. 스님이 이번에는 이웃에 살고 있던 가난하고 착한 사람에게 시주를 청했다. 착한 사람은 스님에게 정성껏 시주를 했다. 시주를 받은 스님은 착한 사람에게 짚으로 바구니를 하나 만들어 주고는 떠났다. 스님이 떠난 뒤 그 바구니 속에서는 신기하게도 쌀이 쏟아져 나와 가난하고 착했던 사람은 금방 부자가 되었다. 이것을 본 부자는 땅을 치면서 원통해 했다. 이듬해 그 스님이 다시 부자를 찾아와 시주를 청했다. 이번에는 부자도 스님에게 쌀을 시주하였다. 그러자 스님은 가난한 사람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부자에게 짚으로 바구니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스님이 떠난 뒤 부자가 바구니를 열어 보니 그 속에서는 쌀 대신 개똥이 계속 흘러 나왔다. 부자는 놀란 나머지 그것을 울타리 밑에다가 파묻어 버렸다. 얼마 뒤 그 자리에서는 똥색과 비슷한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이 개나리였다는 이야기다. 마음씨를 곱게 쓰라는 교훈이 담긴 전설이다.

개나리 전설 3

개나리에 얽힌 인도의 전설이다. 옛날 인도에 유독 새를 좋아하는 공주가 있었다. 공주는 아름답고 예쁜 새를 보는 대로 사들여서 궁전 안은 마치 새의 천국 같았다. 공주의 마음에 드는 새를 갖다 바치는 사람은 출세를 했기 때문에 신하들은 백성들을 보살피는 일에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기이한 새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굶주림에 시달렸다. 공주는 아주 멋진 새장을 하나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멋진 새장에 어울릴 만한 예쁜 새가 없었다. 공주는 이 새장에 어울릴 만한 아름다운 새를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만약 그런 새를 갖게 된다면 공주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새를 다 날려 줄 생각이었다. 이런 소문은 곧 온 나라에 퍼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예쁜 새를 들고 공주를 찾아왔다. 그 새는 아름다운 새장에 어울릴 만큼 예쁘고 멋진 새였다. 공주는 너무나 기뻤다. 공주는 노인으로부터 새를 받아서 새장 안에 넣은 다음 다른 새들을 모두 날려보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그렇게 예쁘던 새의 색깔이 점점 변하고 울음소리도 이상한 것이었다. 공주는 새의 몸을 물로 깨끗이 씻어 주었다. 그런데 목욕을 끝내고 보니 흉측한 까마귀의 모습이 아닌가! 그 노인은 까마귀에 예쁜 물감을 칠해서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제서야 공주는 자신이 속은 것을 알고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화병이 난 공주는 시름시름 병을 앓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죽은 공주의 넋은 가지를 뻗어 금빛 장식이 달린 새장과 닮은 꽃으로 피어났다. 이 꽃이 바로 개나리였다는 이야기다.

개나리 전설 4

옛날 옛적 한 마을에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효심 지극한 부부가 있었다. 살림살이는 어려웠으나 부모님 모시고 하나뿐인 외아들 재롱 보며 사는 것이 부부에게는 삶의 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병을 얻어 일어나시질 못했다. 어려운 살림이었으나 농사일까지 전폐하다시피 하여 아버지 병을 수발하였으나 별 차도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스님이 지나가시다 말하였다. 부친의 병에는 약이 없다. 있긴 하나 쓸 수 없는 약이니 들어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부부는 스님에게 통사정하여 그 처방을 묻고 또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처방을 알려 주었는데, 당신네 외아들을 약으로 쓰는 게 부친이 쾌차할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부부는 매우 놀랐지만 아버지의 병환은 갈수록 악화되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부부는 자식이 귀하지만 또 낳으면 될 것이라 상의한 후, 그날 밤 서당에서 돌아온 아들을 약으로 써 아버지께 드리니 아버지의 병이 씻은 듯 나았다. 그 후 쾌차하신 부친이 제 수명을 다 사시고 돌아가시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부친의 상여가 나가는 곳만은 이상하게도 비가 개어 장사를 잘 모셨다고 한다. 후에 사람들은 이들 부부의 효심이 지극하여, 하느님도 감동하여 억수 같던 비도 개이게 해주었다고 여겼다. 그 후로 이 마을 이름을 개인날(晴日)의 마을이란 뜻으로 개나리라 불렀다고 한다.

개나리 전설 5

옛날 옛적 어느 깊은 산골에 가난한 화전민 일가가 살았다. 오순도순 화목한 집안에 올망졸망한 어린 자식들이 많아 하루하루 끼니 잇기도 벅찰 지경이었다. 꼬맹이들은 봄이 되면 흐드러지게 핀 꽃속에서 놀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큰 녀석은 제법 집안일도 도울 정도가 되었다. 어린 동생들은 마냥 즐겁게 놀지만 조금 철이 든 큰 녀석은 내심 우울했다. 입이라도 하나 줄여 어린 동생들의 배고품을 줄여 볼까 먼 타향에 머슴살이라도 떠날 여량이었다. 여차저차하여 한 양반댁에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다. 고향의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보리쌀 한 됫박이라도 더 보내주려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못된 주인나리는 일이 서툴다거나 밥을 많이 먹는다거나 착하고 일 잘하는 머슴을 몹시도 괴롭혔다. 이듬 해 봄이 되었다. 산에 노오란 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머슴은 고향에서 보던 꽃이라 반가움에 한 포기를 캐다가 주인 댁 담장 밑에 심었다. 고향 생각이 나고 어린 동생들 생각 날 때마다 시름에 젖을 때마다 노오란 꽃을 보며 시름을 달랬다. 주인 댁 나리는 이것이 몹시 못마땅했나보다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잦았던 것이다. 하여 잦은 핀잔도 들었다. 어느 날 힘든 일을 마치고 잠시 쉴 참에 꽃 옆에 앉았다. 이때 머슴의 쉬는 꼴을 못 보는 주인나리가 나타나서 잔소리를 하였다. 머슴도 공연히 심통이 났다. 주인나리가 가만히 꽃을 바라보니 참 예뻤다. 해서 “이 노오란 꽃 이름이 무엇이냐?”며 머슴에게 물었다. 순간 머슴은 못 살게 구는 주인나리를 골려주고 싶었다. “개나리”입니다. 그래 “개나리 나리 나리 개나리 이름도 참 곱구나.” 주인 양반은 마치 대단한 것을 알아낸 듯 매우 흡족해했다. 머슴은 못 된 주인나리를 대놓고 욕할 수도 없고 하니 꽃을 볼 때마다 주인나리라 생각하고 “나으리 나으리 개나으리”하며 아주 지혜롭게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고 한다.

개나리 전설 6

옛날 옛적에 어는 작은 마을에 ‘나리’라는 처녀가 있었다. 그런데 이 처녀의 외모가 출중해 인근 마을에도 소문이 자자했다. 여기저기 혼담이 들어왔지만 나리는 괜찮은 혼처 자리에도 불구하고 거절만 했다. 그냥 작은 동네에서 평범한 아낙으로 살기 싫어서 더 나은 혼처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에 방이 붙었다. 왕자가 아내를 맞는데 귀족의 아가씨뿐만 아니라 평범한 아가씨들도 신분 상관없이 선을 보겠다는 내용이었다. 인물 꽤나 괜찮다고 자찬하는 동네 양반집 아가씨들은 몸종을 준비하여 떠날 차비를 했지만 나리는 가난하여 작은 봇짐하나 꾸려 길을 나섰다. “나의 미모를 보면 분명히 왕자님이 나를 아내로 맞을 꺼야. 그러면 나는 이 다음에 왕비가 될꺼고...” 나리는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꿈꾸며 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궁에 도착하는 날은 정해져 있고 편안하게 가마나 말을 타고 여염집 처녀와는 다르게 나리는 태산준령을 짚신발로 넘다 미끄러지고 구르면서 온 몸에 생채기가 나도 그 꿈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궁궐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보니 나리의 행색은 점점 볼품없어지고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얼굴엔 햇빛에 바람에 먼지에 생채기로 예쁜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몸도 지치고 발은 퉁퉁 부어 한 발자국도 걷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그래도 어떻게든지 궁궐에 들어가 왕자님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겨우 비틀대며 걸어갔으나 궁궐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병에 걸려 앓아 눕게 되었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리의 모습은 예전의 아름답고 화사하고 예뻤던 얼굴이 아니었다. 그저 기미에 거친 살갗에 주름이 패인 촌부의 얼굴로 변해 있었던 거였다. “나 궁에 들어가서 왕자님을 만나야 하는데... 만나야 하는데...” 나리는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앓다 죽고 말았다. 마침 나리가 죽은 날은 왕자님이 결혼을 선포하고 잔치를 여는 날이었다. 동네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지도 못하고 객사한 나리를 불쌍히 여겨 동네 어귀에 장사를 지내주었다. 세월이 흘러 그 무덤가에 이름 모를 한 무더기의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했고 겨울 기운이 사라진 나른한 공기가 가득한 어느 날에 노란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임금과 왕비가 행차하다 그 마을을 지나가려는데 마을 어귀에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무리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참 고운 꽃이구나...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이니 이 꽃의 이름이 무엇인고?” 그 마을의 촌장이 다가와 그 꽃이 핀 사연과 나리의 이야기를 임금에게 전해 주었다. 임금은 처녀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 아파하여 잔에 술을 가득 부어 무덤에 술을 뿌려 나리의 넋을 위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떠나려는데 하늘에서 후두둑 후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살아생전 이루지 못한 꿈을 죽어서 임금의 술잔까지 받은 나리가 감동하여 흘리는 눈물이라고 했다. 그래서 봄이 되면 나리는 옥황상제의 허락을 받아 꽃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와 자신을 보아달라고 꽃망울을 터뜨리고 약속된 시간이 다 되면 꽃잎을 떨구고 애통한 눈물을 비처럼 흘리며 다시 내년을 기다린다. 개나리의 꽃잎은 마치 백합이나 나리꽃처럼 길쭉하게 갈라진 모습이 흡사하였으나 워낙 꽃잎이 작고 기품 있다는 느낌이 없어 무늬만 나리 같다고 하여 ‘개나리’라고 하지 않을까 한다.

개나리꽃이 나오는 꿈은 모두 좋은 꿈이었다. 개나리꽃 꿈을 꾸셨다면 사업을 확장해도 무방할 정도로 행운이 따르는 매우 좋은 것이었다.

1. 개나리꽃이 활짝 피어있는 꿈 - 새로운 일에 시작하게 되어 새로운 사람들과 폭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2. 개나리꽃을 손에 쥐는 꿈 -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어 업무에 두각을 보이게 된다.

3. 큰 바위틈 사이에 개나리꽃이 피어있는 꿈 - 귀한 사람을 만나게 되며 뜻밖의 돈과 먹을 것이 생긴다. 좋은 운이 상승하게 된다.

4. 개울가에 개나리꽃이 피어있는 꿈 - 반가운 사람을 만나게 되거나 집안에 경사가 생겨 기뻐하게 된다. 작가나 예술가는 작품을 발표하거나 작품을 통해 자신을 알리게 된다.

5. 거실에 개나리꽃이 피어있는 꿈 - 동창회, 잔치 등 모임을 갖게 되며 집안을 새롭게 꾸미게 된다.

6. 담장아래 개나리꽃이 피어있는 꿈 -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고 자손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

우리나라에서는 목란(木蘭)이라고도 하는 목련(木蓮)은 ‘나무에 피는 연’이라서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그 외 목련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잎이 지고 화살촉 모양의 회갈색 눈이 마치 붓과 같다고 하여 ‘목필(木筆)’이라고 하고,

꽃이 아직 피기 전 꽃봉우리가 작은 복숭아처럼 털이 있어 ‘후도(侯桃)’라고도 한다.

또 꽃봉우리가 피려고 할 때 끝이 북녘을 향한다고 하여 ‘북향화(北向花)’라고 하며 북쪽을 바라본다고 하여 마치 지방에 있는 신하가 임금에 대한 충절을 표하는 것 같다고 하여 ‘충절화(忠節花)’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목련을 꽃은 옥이요 향기는 난초와 같다 하여 ‘옥란(玉蘭)’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목련 중에서 백목련은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다고 하여 영춘화(迎春花-영산홍의 이름과 같음)라 하며, 자목련은 봄이 끝나는 4~5월에 핀다 하여 망춘화(亡春花)라고 한다.

꽃피는 시기는 백목련이 3월, 자목련이 4~5월, 산목련, 태산목이 5~6월에 피기 때문에, 어울려 심으면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 하얀 꽃과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원래 북한에서도 남한과 마찬가지로 해방 이후 일정 기간 동안 무궁화가 북한의 국화였으나 1991년 4월 10일 김일성이 "목란꽃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향기롭고 생활력이 있기 때문에 꽃 가운데서 왕"이라며 국화로 삼을 것을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북한에서는 목란이라고 하기 때문에 모란과 혼동할 수 있지만, "목란(木蘭)=목련(木蓮)≠모란(牡丹)"이고 북한에서 국화로 삼은 것은 목련 중에서도 산목련, 즉 함박꽃 종류다.

북한에서 산목련을 목란이라 부르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고 한다. 1964년 5월 경에 김일성이 황해도 정방산에 있는 성불사의 휴양소를 찾았을 때, 만개한 산목련의 꽃을 보고 "이처럼 좋은 꽃을 그저 함박꽃이라고 불러서는 아쉬움이 남으니, 이제부터는 이 꽃을 아름다운 꽃에 붙이는 난초(蘭草)의 "란(蘭)"자를 붙여 "목란(木蘭)"이라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이후 산목련을 목란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또는 무궁화와 더불어 예부터 한국을 상징했던 꽃 중 하나였거나 남북한 모두 목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목련에 관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가 최초이다. 김수로왕(金首露王, 首陵, 惱室靑裔) 7년(서기 48년)에 신하들은 왕에게 장가들 것을 권했다. 하지만, 김수로왕은 하늘의 뜻이 곧 있을 것이라면서 점잖게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바다 서쪽에서 붉은 돛을 단 배가 북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 '목련'으로 만든 키를 바로잡고(整蘭橈), 계수나무로 만든 노를 저어 그들을 맞아들였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아리따운 공주는 인도(印度)의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인 허황옥(許黃玉)으로 훗날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었다는 기록이다.

목련꽃에는 슬픈 전설이 서려 있다. 아주 먼 옛날 하늘나라에 아름답고 착하고 상냥한 공주가 살고 있었다. 하늘나라의 젊은이들은 저마다 공주를 사모하여 그녀와 결혼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공주는 하늘나라의 젊은이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북쪽 바다지기의 사나이다운 늠름한 모습에 홀딱 반한 나머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공주는 부왕 몰래 궁궐을 빠져나가 북쪽으로 바다지기를 찾아 갔다. 그러나 바다지기는 정직하지 못한 데다가 흉악한 사람이었다. 물어 물어서 바다지기를 찾은 공주는 그에게 이미 아내가 있음을 알고는 절망한 나머지 바다에 몸을 던졌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바다지기는 착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자신에 대한 공주의 사랑에 감동하여 그녀를 양지바른 곳에 고이 묻어 주었다. 그 후 바다지기는 삶의 의지를 잃은 듯 기운도 없고, 말도 하지 않았으며, 웃음도 잃어버렸다. 바다지기의 아내는 남편의 사랑이 자신에게서 영원히 떠나갔음을 깨닫고는 독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바다지기는 그의 아내를 공주의 옆에다 나란히 묻어주었다. 하늘나라의 왕은 두 여인을 불쌍하게 여겨 공주는 백목련, 바다지기의 아내는 자목련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그녀들의 못 다한 사랑으로 인해 목련은 항상 바다지기가 살고 있는 북쪽을 향해서 꽃봉오리를 터뜨린다고 한다.

목련은 백악기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장 오래된 꽃식물 중 하나다. 최근 들어 분자생물학 기술이 발달되면서 목련과 그와 비슷한 계통의 식물들이 다른 쌍떡잎식물들과 전혀 다른 원시적인 속씨식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에 따라서 목련군(Magnoliid)라는 독립적인 군으로 독립되었다. 목련이 출현한 시기는 벌과 나비가 출현하기 전이다. 그래서 꿀샘이 없고 대신 꽃가루를 먹는 딱정벌레 등을 유인하기 때문인지 목련군에는 유달리 향이 강하고 멀리 퍼지는 꽃이 피는 나무가 많다. 목련꽃 종류는 화려하고 큰 꽃이 피지만 벌 또는 나비가 수정을 하지 않고 딱정벌레 종류가 가루받이를 한다.

목련에 관련된 대표적인 노래는 아마도 박목월 시인의 “4월 노래”가 아닌가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박목월 시인에 곡을 붙인 노래를 감상해 보자.

4월의 노래 (박목월)

https://www.youtube.com/watch?v=6GPA-2jRQi8

목련 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 꽃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화 – 엄정행​​

https://www.youtube.com/watch?v=jtX4yQJQDyg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

추운 겨울 헤치고 온 봄 길잡이 목련화는

새 시대의 선구자요 배달의 얼이로다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처럼 순결하게 그대처럼 강인하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아름답게 살아가리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아름답게 살아가리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라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라

하얀 목련 – 작사/양희은, 작곡/김희갑, 노래/양희은

https://www.youtube.com/watch?v=7220Gk_Q1Cs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언제까지 내 사랑이여라 내 사랑이여라

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아름다운 사랑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관악산 정상으로 향하는 초입에는 계곡을 건너는 짧은 다리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는 회원들은 비가 오고 있음을 증명하듯 우의를 입거나 우산을 들고 있다.

짧은 다리 옆에는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였다. 영춘화 답게 봄이 왔음을 알리기 위해 비를 맞으면서도 지나는 모든 탐방객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비를 맞으며 오르는 산행이지만 봄을 알리는 영춘화를 보면서 올라왔기에 번거롭다기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다. 서울대정문 관악산공원 입구에서 출발하여 약 50분의 산행으로 제4야영장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우의를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할애했다. 난 겉옷에 우의 상의를 걸쳤기에 등으로 많은 땀을 흘리고 왔었다. 휴식을 취하며 겉옷을 벗고 우의 상의만 걸쳤더니 온도가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5분여의 첫 휴식으로 달콤함을 끝내고 446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446봉까지는 오늘의 하이라이트요 가장 큰 난코스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발걸음은 가볍게 느껴진다. 조금 오르다보니 이정표가 보인다. 삼막사까지 1.5km이므로 446봉까지는 약 1.0km로 추정된다. 휴식에서부터 계속 오르막이다. 446봉에 도달하기위해서는 약 200여 미터는 데크 계단길이다.

446봉의 이정표

446봉에서 우산을 받쳐 들고 연주대 방향을 바라보니 관악산 정상이 보인다. 이곳은 지난 2021년 1월에 다녀간 곳이기도 하다. 제1934회 정기토요산행의 코스를 되돌아보면 장군봉 아래에서 삼막사로 향하는 446봉까지는 역방향으로 동일한 코스였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에는 전혀 기억이 없다. 우산을 써 먼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앞만 보고 걸어서인지 처음 걷는 길인 줄 알았다.

446봉을 거쳐 능선을 따라 가니 좌우의 전망이 산행의 즐거움을 배로 증가시켜 준다. 그리고 우리가 거쳐 갈 능선이 보여 소중히 간직하듯 찍어 놓았다. 운동장바위에서 경인교대 방향을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어느덧 장군봉과 석수역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우리가 지나온 446봉까지 지난 1월에 지나간 길이었다. 우리는 석수역 방향으로 나아간다.

찬우물에 도달하니 오상환 고문께서 약수물을 드신다.

446봉에서부터 찬우물을 지나올 때까지 탐방객 1명도 보지 못했다. 단체사진을 찍으려 해도 탐방객이 없으니 찍지 못했다. 마치 찬우물을 지나고 불영암으로 향하는 길에 유일하게 1분이 올라오신다. 이 분께 부탁을 드려 겨우 단체사진 1장을 찍게 되었다.

단체사진을 찍고 보니 석수역까지 내리막 길이란다. 이제부터 산 바로 아래가 삶의 터전인 마을이 나온다. 내리막 길 바로 앞이 아파트가 나와 바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어서 손을 만들어 놓은 듯한 바위가 있어 사진을 찍었다.

바위가 떡 주무르듯이 빗어놓은 듯 하다. 산이 아니고 대형건물에 있었다면 예술가의 작품으로 착각할 정도로 인위적으로 제작한 바위 같다.

 

호암산성에 도착해서야 호암산성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불영암에 도착해서야 휴식 겸해서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불영암에서 신랑각시바위 방향으로 향하는 곳에 진달래 한 그루가 꽃을 만발하여 지나가는 탐방객을 더욱 즐겁게 맞이하였다.

진달래의 만개를 감상하고 도착한 곳이 신랑각시바위다. 신랑각시바위는 누가 보더라도 남녀의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듯 하였다. 전에도 그렇게 사랑했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사랑할 젊은 남녀의 모습이 너무 순수해서 아름답게 보였다. 절대 결코 변하지 않고 영원히 그대로 사랑하기를 바라면서, 우리네 인간들도 순수하고 이성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헤어짐이 없기를 바래본다.

불영암에서의 휴식과 진달래의 만개 그리고 신랑각시의 사랑을 감상하고 도착한 곳이 호암산이다. 정상은 아닌 것 같고 석수역으로 향하는 길목 같다.

현 위치가 호암산이라는 국가지점번호에서 약 30분을 걸어 내려오니 호암산 숲길 공원이다. 이 날머리는 서울둘레길 제5코스인 관악산코스(사당역 ∽ 석수역)였다. 이곳에 도착해서야 이번 주 산행은 마무리 되었다.

서울대정문 관악산공원 입구에서 오후 1시 30분 정각에 출발하여 오후 5시 정각 호암산 숲길공원에 도착하였으므로 정확히 3시간 30분의 산행이었다. 비를 맞으며 걷는 산행이었으므로 이 정도 시간은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닌 아주 적당한 산행이었다.

종일 비가 와 산행의 즐거움보다 번거로움이 더 많을 것이라는 예상은 벗어났고 오히려 목련, 개나리, 진달래 등의 영춘화 만개로 아름다움이 더욱 빛이 난 산행이었다. 게다가 신랑각시의 사랑바위까지 보았으니 아름다운 사랑은 더욱 증가되기에 충분하였다.

산행을 마쳤으니 우리의 만찬은 사랑스런 분위기의 식당에서 눈으로도 즐거운 음식을 주문해야겠다. 우리의 소중한 에로스와 카타르시스를 위하여......

관악산 산행에 종일 비가 오는데도 끝까지 안내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밝은 표정으로 이끌어 주신 김현호 회원님께 다시 한 번 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김현호 회원님!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즐거운 산행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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