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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산악회

[1898회] 북한산성 성문 2/2 종주 산행기 - 2회

by 출판N산악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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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회] 북한산성 성문 2/2 종주 산행기 - 2회

 산행 코스 : 북한산우이역(우이신설선) 2번 출구 – 하루재 – 위문(백운봉 암문) - 용암문 – 대동문 – 보국문 – 대성문 – 대남문 – 청수동 암문 – 부왕동 암문 –가사당 암문 – 대서문 – 북한산성 입구 매표소

 산행 일시 : 2020년 5월 9일 오전 10시 05분 ∼ 오후 5시 05분 (7시간)

 참석 인원 : 1팀 – 박찬익 회장, 2팀 – 박성원 총무, 합류 – 허진 (합계 3명)

 상세시간

10:05 북한산우이역(우이신설선) 2번 출구 - 산행의 시간기록 시작.

10:08 삼각산도선사 셔틀버스 승강장

10:45 백운대 가는 길. 백운대탐방 지원센터

11:06 북한 21-01 쉼터. 한 명도 없다.

11:11 하루재. 백운대 1.4Km, 인수대피소 0.2Km, 백운대탐방 지원센터 0.7Km. 사전답사에 없던 곳.

11:46 80도 경사의 쇠난간 설치

11:52 위문. 용암문 1.2km

12:32 용암문. 대동문 1.5km

13:10 동장대. 대동문 0.5km

13:21 대동문. 보국문 0.6km

13:35 보국문. 대성문 0.6km

13:59 대성문. 대남문 0.3km.

14:06 대남문. 청수동 암문 0.3km.

14:06-16 휴식, 박찬익 회장 보유 빵으로 간식.

14:22 청수동 암문. 부왕동 암문 1.2km.

15:11 부왕동 암문. 가사당 암문 1.2km.

15:25 증취봉

15:34 용혈봉

15:41 용출봉

16:00 가사당 암문. 대서문 2.3km(사진 없음)

16:45 대서문

17:05 옛골 토성(02-385-3064) - 산행의 시간기록 마침.

19:00 커피볶는집. 마루니(02-323-2002)

21:38 북한산성입구 버스정류장 704번 버스 승차. 구파발역 하차, 허진 대표 광화문 행.

1. 들어가는 말

북한산성 성문 종주는 공지한 바와 같이, 2주에 걸쳐 산행하기로 하였다. 지난 5월 첫째 주인 5월 2일(토)에는 회원의 호응도가 높아 8명이 참석하고, 오후 1시 30분 효자리에서 시작하였다. 1팀은 서암문에서 대남문으로 직행하고, 2팀은 서암문에서 북문을 거쳐 위문까지 산행하는 것이었다. 1팀이 대남문까지 산행한 후, 구기치안세터로 내려갔기 때문에 본진으로, 위문까지 산행한 팀은 2팀으로 분류하였다. 1팀의 기록을 우선으로 책정하여 지난 주 산행은 서암문에서 대남문까지 산행한 것을 공식적으로 확정하였다. 총무인 제가 위문까지 산행하였기 때문에 산행기의 기록은 2팀이 서술한 것을 보존하기로 하였다.

이번 주 산행(5월 둘째 주, 5월 9일)은 북한산성 성문 2/2 종주이므로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2개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하였다. 1팀인 본진은 낮 12시 30분 구기치안센터에서, 2팀은 오전 10시 북한산우이역에서 출발하여 오후 2시 대남문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하였다. 저는 지난 주에 위문까지 산행하였으므로 2팀으로 분류되어 위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오후 2시 대남문에서 1팀과 합류한 후, 북한산성 성문 종주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한국출판인산악회의 북한산성 성문 종주는 5월 첫째 주부터 둘째 주까지 2주에 걸쳐 시행하므로 거리 기록은 지난 주 시작점인 효자리부터 이번 주 종착점인 대서문까지 합산하여 산정한다. 시작점인 효자리부터 위문까지는 지난 주 산행기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이번 주부터는 위문부터 대서문까지 산행기를 작성하고자 한다. 거리 기록은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이정표를 기준으로 표기한다. 효자리부터 대서문까지 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효자리 - 0.6Km - 서암문 - 1.8Km - 북문 - 2.1Km - 위문 - 1.2Km - 용암문 - 1.5Km - 대동문 - 0.6Km - 보국문 - 0.6Km - 대성문 - 0.3Km - 대남문 - 0.3Km - 청수동 암문 - 1.2Km - 부왕동 암문 - 1.2Km - 가사당 암문 - 2.3Km - 대서문 – 0.8Km - 북한산성 입구 매표소

2. 2팀(북한산우이역 – 위문) 박성원 총무 산행

본인(박성원 총무)은 2팀으로 지난 주 효자리에서 서암문과 북문을 거쳐 위문에 도착한 후, 북한산성 입구로 내려왔고, 1팀은 효자리에서 대남문까지 산행한 후, 구기치안센터로 내려왔다. 북한산성 성문을 종주하려면, 2팀은 위문에서 대남문까지 산행해야 한다. 이번 주 산행은 오후 2시 대남문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2팀이 오후 2시 대남문에서 만나려면 북한산우이역에서 오전 10시에 만나 약 4시간의 산행을 해야 하는 것이고, 1팀은 구기치안센터에서 낮 12시 30분에 만나 1시간 30분 동안 산행하면서 대남문으로 올라와야 한다.

본인이 홀로 북한산우이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5분이었다. 위문으로 올라가는 가장 빠른 코스가 북한산우이역이라하여 이 지점으로 오게 된 것이다. 북한산우이역에 도착하니 어제 저녁부터 내린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북한산 탐방객 수가 지난 3월 675,900명, 4월에714,633명으로 지난해보다 45% 늘었다고 한다. 5월은 4월보다 더 많은 인원이 탐방하리라 생각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등산객 2개팀 10명 이내의 인원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북한산 본산에서 올라갈 때는 많은 인원이 있으리라 믿었다.

올라온 길에도 한 명도 없고...
올라갈 길에도 한 명도 없다.

‘백운대 가는 길’(백운대탐방 지원센터)에서 약 20분을 걸었지만 등산객은 한 명도 없다. 이때 쯤 되면 나는 사회인이 아니고 자연인이 된다. “북한산은 나의 산이고, 봄철을 맞아 물청소하는 날이다.” 포부를 은근슬쩍 키우고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오전 11시 11분. 하루재에 올랐다. 하지만 하루재라니... 지금까지 계속 오르막이었기 때문에 위문까지 절반 정도 왔으리라 생각하였다. 비가 오면 안경을 낀 나에게는 시각이 좁아지고, 짧아져서 거의 발걸음 앞에만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빠진 것으로 생각했다. 어제까지 검색한 사전답사에서 위문까지 가려면 깔딱고개로 가야하는 것이다. 하루재로 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 하루재 이정표를 보고 난감했다. 고민했다. 되돌아 온 길을 내려갔다 깔딱고개로 가야 하는지? 물어볼 사람도 없다. 우리 회원을 믿기에 카톡 단체방에 구원을 요청했다. 역시 회원님께서 잘 알려 주신다. 회원님의 경험이 곧 나의 자산이 되었다. 다시 용기백배하여 힘차게 전진한다. 4월에만 71여만명이 왔다는 곳에 비가 오니 한 명도 없다니... 너무 극단적인 차이가 난다. 백운대로 이정표만 보고 따라간다. 하루재 이후부터 위문까지 대화나 물어볼 사람도 한 명도 없고, 비는 계속 내리기 때문에 조망할 것도 없고, 쉴 만한 정신적・육체적 사항이 아니므로 앞만 보고 계속 올라갔다. 그래서 얼떨결에 위문에 도착하였다. 이정표를 보고서야 위문임을 알았다. 이때가 오전 11시 52분이었다. 오전 11시 40분에 보내온 허진 대표님의 카톡 메시지를 위문에 도착해서야 보게 되었다. 허진 대표님이 보국문에서 기다린다니... 다시 또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려는 회원님이 계시다니 고마움이 우러난다.

3. 북한산성 성문 종주 산행기 - 2회

지금부터가 지난 주에 이은 북한산성 성문 종주 산행기이다. 지난 주에 산행하였던 효자리부터 위문까지의 기록을 다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효자리 – 시작점. 서암문까지 0.6Km.

 

효자리에서 100m, 서암문(시구문)까지 500m 지점. 서암문은 효자리에서 600m 지점에 있다.

서암문 – 효자리 0.6Km. 북문 1.8Km.

서암문에 설치한 이정표

북문 – 서암문 1.8Km. 위문 2.1Km. 효자리부터 2.4Km. 이정표에 백운대까지 2.4Km라고 표기되어 있다. 위문에서 백운대까지 0.3Km이므로 북문에서 위문까지는 2.1Km가 된다.

북문의 이정표

위문 – 북문 2.1Km. 용암문까지 1.2Km. 효자리부터 4.5Km.

백운대탐방 지원센터에서 위문까지 2.1Km를 47분 만에 올라왔다. 위문에 올라오니, 하루재를 거쳐 올랐던 약간의 오류는 모두 불식되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고, 암문에 서 있으면 매우 거친 바람에 오한을 들게 한다. 허기는 느끼지만 비와 바람으로 식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마침 한 분이 계셔 인증사진을 부탁드려 겨우 한 장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허진 대표님께서 보국문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니, 빨리 보국문으로 가고 싶었다. 여기 위문은 바람의 영향으로 식사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용암문으로 출발하면서 용암문에서 식사할 계획이다.

위문의 이정표
몰골이 순수 자연인이닷!!!
노적봉. 비구름에 갇혀 볼 것이 없으므로 그냥 지나가라 한다.

 

용암문 – 위문 1.2Km. 대동문까지 1.5Km. 효자리부터 5.7Km.

오후 12시 32분, 용암문 도착. 많이 배고프다. 북한산우이역에서 구매한 김밥을 꺼낸 후, 집에서 준비한 컵라면에 보온병의 따스한 물을 부었다. 우산을 받쳐 들고 컵라면을 먹으려는 순간, 국립공원 직원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 “여기서 불편하게 식사하지 말고 여기부터 200m 지점에 북한산 대피소가 있으니 거기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식사하세요.”하신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거리에 북한산 대피소가 있음을 이정표를 통해 확인하였다. 다시 배낭을 추스르고 컵라면은 왼손에 들고 비 맞으며 성벽을 따라 갔다. 약 200m 이상도 걸었고, 시간적으로도 약 10분 정도 걸었는데 북한산 대피소는 나오지 않는다. 조금 더 가면 대피소가 나오리라 생각하고 또 열심히 걸었다. 대피소는 안 나온다. 배는 고프고, 컵라면을 들고 있는 왼손에 쥐나 날 정도가 되었다. 안 되겠다 생각되어 바람이 잦은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시간을 보니, 약 20분 정도를 걸어온 것이었다. 나중에 허진 대표에게 물어보니 북한산 대피소는 성벽을 따라가면 안 되고 북한산성 입구 하산 길로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지하고, 게다가 이해력도 부족하니 생고생이 많았다. 어쨌든 보국문 방향으로 간 것이므로 이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용암문의 이정표. 핸드폰 카메라는 이미 비에 젖었는지 서리가 끼었다.

용암문

 

용암문은 북한산성의 대동문 북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용암봉 아래에 있어서 용암봉암문이라고도 부르며 우이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암문은 일반 성문과 달리 은밀한 곳에 만들어 전쟁 때에는 비밀통로로 사용하였다. 암문은 그 모양이 홍예가 아닌 방형이라는 것이 특징이며 상부에 문루도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용암문은 동암문인 보국문과 달리 성 내부 쪽을 홍예형으로 만들었다. 용암문 상부의 여장은 무너졌던 것을 1996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오후 1시 10분, 동장대에 도착하고, 이정표를 보니 여기서부터 대동문까지 500m란다.

 

동장대가 핸드폰 카메라가 서리가 끼어 찍힌 사진이지만, 비구름에 쌓여 신비의 비경인 것처럼 보여 그대로 올린다.

대동문 – 용암문 1.5Km. 보국문 0.6Km. (대성문 1.2Km. 대남문 1.6Km.) 효자리부터 7.2Km.

오후 1시 21분, 대동문에 도착한다. 용암문에서 1.5Km.를 약 50분만에 도착하였다. 중간에 식사와 휴식을 하였지만 나의 예상 시간보다 더 많이 걸렸다. 보국문에서 기다리고 계신 허진 대표를 만나려는 기쁨에 대동문은 사진만 찍고 서둘러 보국문으로 향한다.

 

대동문에서 대남문까지 1.6Km로 표기되어 있다. 대성문부터 대남문까지는 0.4Km가 된다.

대동문

 

대동문은 북한산성의 동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서울의 동북쪽 수유동과 우이동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문의 형식과 모습은 대남문이나 대성문과 같다. 그러나 홍예문은 이 문이 가장 크다. 하부의 홍예문은 통로로 사용되었으며 상부의 단층 문루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문루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3년에 새로 복원하였는데 이때 홍예문 상부의 여장도 함께 복원하였다. 문루 바깥쪽에 낮은 담장 형식으로 쌓은 여장은 아군이 몸을 숨기고 활이나 총을 쏠 수 있도록 설치한 군사 시설이다.

보국문 – 대동문 0.6Km. 대성문 0.6Km. 효자리부터 7.8Km.

오후 1시 35분, 보국문에 도착한다. 대동문에서 보국문까지 600m를 14분만에 도착한 것이다. 대동문에서 보국문까지는 계속해서 성벽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순환하는 코스여서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전망이 매우 좋으리라 생각된다. 보국문으로 내려가는 마지막 길에서 허진 대표님의 우리 한국출판인산악회 특유의 함성이 들려온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허진 대표님의 따스한 커피로 비에 젖은 나의 온 몸을 녹인다. 이 한 잔의 커피는 심적으로까지 위로하고 격려하며, 응원해주어 더욱 용기가 북돋게 되었다. 허진 대표님을 만나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된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예상하지 못한 길로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보국문의 이정표
보국문

 

보국문은 북한산성의 동남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보국문은 소동문 또는 동암문이라고도 한다. 암문은 평상시에는 백성들의 출입문으로 이용되었으며 전쟁 때에는 비밀통로로 사용되었다. 암문은 돌로 만들었지만 홍예 형태가 아닌 방형의 평문 형식이며 상부에 문루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1993년에 보국문 상부의 여장을 복원하였고 부분적으로 수리하였다.

대성문 – 보국문 0.6Km. 대남문 0.3Km. 효자리부터 8.4Km.

오후 1시 59분 대성문에 도착하였다. 보국문에서 대성문까지 600m를 24분만에 도착한 것이다. 대동문에서 보국문까지 600m는 14분만에 도착하였지만, 보국문에서 대성문까지 600m는 24분이 걸렸다. 10분이 지체된 것이다. 이것은 아마 따스한 커피 한 잔에 따른 휴식과 만나의 기쁨에서 오는 온화한 대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시에 대남문에서 박찬익 회장님을 만나야 하므로 빨리 서둘러야 했다.

 

대성문 이정표에는 대남문까지 0.3Km로 표기되어 있다. 대동문에 설치된 이정표에는 대성문부터 대남문까지 0.4Km로 되어있다. 대남문에 설치된 이정표에도 0.3Km로 되어 있으므로 대동문에 설치된 이정표의 대남문 1.6Km를 1.5Km로 고쳐야 할 것이다.

대성문 - 이곳의 안내도는 교체 예정이라 기록하지 못했다.

대남문 – 대성문 0.3Km. 청수동 암문까지 0.3Km. 효자리부터 8.7Km.

오후 2시 6분, 대남문에 도착하였다. 대성문에서 대남문까지 300m를 7분만에 도착하였다. 약속 시간보다 6분이나 연체되었다. 추운 날씨에 비 맞으며 기다리신 박찬익 회장님께 미안한 감정이 절로 일어난다. 대남문에서는 박회장님이 준비해 온 빵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약 10분 간의 휴식을 취하였다.

 

대남문에 설치된 이정표에도 대남문에서 대성문까지 0.3Km로 표기되어 있다.

대남문. 수리 중이다. 안내도가 없어 기록하지 못했다.

청수동 암문 - 대남문까지 0.3Km. 부왕동 암문 1.2Km. 효자리부터 9.0Km.

오후 2시 22분, 청수동 암문에 도착하였다. 대남문에서 청수동 암문까지는 300m이나 간식과 휴식으로 16분만에 도착한 것이다. 대남문에서부터 청수동 암문까지는 흙길이고 내리막길이었다. 비를 맞으며 걸어도 기분은 상쾌하였다. 북한산우이역에서부터 대남문까지는 박회장님을 만나야 한다는 긴장감이 잠재되어 있었는지 피곤하거나 힘들거나 하는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여기 청수동 암문에 도착하고부터는 서서히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북한산우이역에서부터 청수동암문까지 거의 10Km 정도 걸어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리막길이라는 희망으로 선두인 허대표님과 박회장님의 뒤를 따라간다.

청수동 암문의 이정표
청수동 암문에서의 박찬익 회장과 허진 대표의 자연스런 모습.

 

북한산의 나월봉과 문수봉 사이의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다. 1711년(숙종 37년)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暗門) 중 하나로, 탕춘대성과 비봉에서 성 안쪽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청수동 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門樓)는 마련하지 않았다. 성문 양쪽은 장대석으로 쌓아올리고, 그 위 천장 부분은 장대석 여러 매를 걸쳐 만들었다. 이런 양식의 성문을 아치 모양의 홍예식과 구분하여 평거식(平据式)이라 부른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부왕동 암문 – 청수동 암문 1.2Km. 가사당 암문 1.2Km. 효자리부터 10.2Km.

오후 3시 11분, 부왕동 암문에 도착한다. 청수동 암문에서 부왕동 암문까지 1.2Km를 50분만에 내려왔다. 청수동 암문에서 부왕동 암문까지는 험해도 너무 험했다. 비구름으로 인해 전방 10m 이상은 보이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아마 길이 보였으면 낭떠러지로 인해 발걸음이 더 더디었을 것이다. 이 길은 초행의 산악인이 보아도 초보자가 즐길 코스는 아니다. 내려가길 다행이라 생각했다. 만약 올라오는 길이라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부왕동 암문의 이정표
부왕동 암문

 

북한산의 나월봉과 증취봉 사이의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다. 1711년 숙종 37년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暗門)중 하나로, 성 밖의 삼천사 쪽에서 성 안쪽의 중흥사에 이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부왕동 암문을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門樓)를 마련하지 않았다. 출입구의 모양은 암문의 일반적인 형태인 사각 형태가 아니라 외관상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 형태를 띠고 있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부왕동 암문 아래에는 원각사(圓覺寺)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원각사는 북한산성의 축조와 수비, 관리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던 승병이 주둔하였던 승영사찰(僧營寺刹)이었는데, 부왕동 암문의 실질적인 방어와 수축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까닭에 부왕동 암문은 원각문(圓覺門)으로도 불린다.

가사당 암문 – 부왕동 암문 1.2Km. 대서문 2.3Km. 효자리부터 11.4Km.

오후 4시, 가사당 암문에 도착했다. 부왕동 암문에서 가사당 암문까지 1.2Km를 49분만에 도착했다. 부왕동 암문에서 가사당 암문까지는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등 3개의 봉우리를 거치면서 내려왔다. 허진 대표님이 말에 의하면 의상능선 코스의 조망은 북한산 코스 중에서 최고 중 하나라는 것이다. 비구름에 갇혀 조망은 볼 수 없었다. 그 덕에 빨리 내려왔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 코스도 결코 초보자가 다닐 곳이 아니다. 초보자에게 권유할 코스는 아니다. 그래도 내려오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오늘 10Km이상 걸었던 나에게 있어서 만약 올라가는 길이었다며 끔찍했을 것이다. 이번 산행의 본질은 성문 종주이므로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등 봉우리 정상에 찍은 사진은 올리지 않는다.

 

가사당 암문에 설치된 이정표에는 대남문 2.7Km로 되어 있으나, 대서문까지의 거리는 표기해 놓지 않았다. 다른 기록에 의해 가사당 암문에서 대서문까지의 거리를 2.3Km라고 되어 있어 이를 인용하기로 한다. 대서문에서 가사당 암문까지 거리를 알 수 있는 이정표를 찍어 놓은 것이 있으시거나 또는 정확한 거리를 알고 계시는 회원께서는 댓글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사당 암문. 그동안의 성문에서는 산악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곳 가사당 암문에서 한 일행을 만나 사진을 부탁드려 유일하게 3명이 찍힌 사진이 되었다.

 

북한산의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의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다. 1711년 숙종 37년,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만든 8개의 암문(暗門) 중 하나로, 현재 백화사가 위치한 의상봉길에서 북한산성으로 오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적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가사당 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門樓)는 마련하지 않았다. 성문 양쪽은 장대석으로 쌓아올리고, 그 위 천장 부분은 장대석 여러 매를 걸쳐 만들었다. 이런 양식의 성문을 아치 모양의 홍예식과 구분하여 평거식(平据式)이라 부른다. 원래 문짝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문짝을 달았던 원형의 지도릿돌과 일반문의 빗장에 해당되는 장군목을 걸었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가사당 암문 아래에는 국녕사(國寧寺)가 자리잡고 있다. 국녕사는 북한산성의 축조, 수비, 관리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던 승병이 주둔한 승영사찰 (僧營寺刹)이었는데, 가사당 암문의 수축과 방어를 담당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까닭에 가사당 암문은 국녕문(國寧門)으로도 불린다.

대서문 – 가사당 암문 2.3Km. 북한산성 입구 0.8Km. 효자리부터 13.7Km.

오후 4시 45분, 대서문에 도착하였다. 가사당 암문에서 대서문까지 2.3Km를 45분만에 내려왔다. 가사당 암문에서 국녕사까지는 내리막길이고, 국녕사부터 대서문까지는 거의 평지이며, 차가 다니는 아스팔트길이라서 길어도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가사당 암문에서 대서문까지의 거리는 2.3Km라고 했지만 북한산성국립공원의 이정표에 나타난 거리가 아니므로 정확하다고 할 수 없다.

대서문

 

북한산성의 정문으로, 성문 16곳 중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1712년(숙종 38년)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대서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갔다. 과거 성내에 마을이 있었을 당시엔 주민들이 대대로 이용했던 성문이기도 하다. 지금의 문루는 1958년에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문루의 형식은 우진각지붕으로 문루의 일반적인 지붕 형태를 따르고 있다. 관영 건물이므로 지붕의 용마루와 추녀마루를 강회로 마감하였다. 누각에 '북한산성 대서문 중수기'가 결려 있어 중수 내역을 전해 준다. 문루의 배수시설로 용머리 모양의 누혈(漏穴:물이 흘러내리도록 구멍을 뚫은 돌)을 성문 앞뒤로 두었다. 성 밖을 바라보는 용은 입을 벌려 누혈의 구실을 제대로 하게 하였으나, 성문 안쪽에 있는 용은 입을 다물고 있어 장식용으로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문루 정면에는 여장을 설치하였는데, 한 장의 화강암으로 만든 점이 특징적이다. 북한산성의 대문 6곳 모두에는 이런 독특한 형식의 여장이 올려져 있다.

이 대서문을 통과하여 중성문을 거쳐 대남문에 이르는 길은 북한산성의 주요 간선도로였는데, 이 대문 3 곳을 맡아서 수비·관리하였던 군부대는 이영청 유영이었다.

북한산성 입구 – 대서문 0.8Km. 효자리부터 14.5Km.

오후 5시 5분, 북한산성 입구 매표소에 도착했다. 효자리부터 북한산성 입구 매표소까지 합산하면 14.5Km의 거리다. 이 기록을 객관적으로 검증받기 위해 각 성문에 설치된 이정표를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 네이버에 게시된 각종 성문 종주 기록을 보면, 몇 시간에 걸쳐 완주하였다는 기록만 되어 있을 뿐 정확한 거리를 기록해 놓은 곳은 없었다.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설치한 이정표의 거리가 공신력이 있다면 내가 기록한 거리 계산은 가장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4. 후기

2주에 걸친 북한산성 성문 종주는 나에게 있어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지난 주는 그나마 햇빛이 있어 더위와의 싸움이었다면, 이번 주는 비와의 투쟁이었다. 개인적으로 비를 맞으며 산행하고 싶었던 욕망도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총무로서 한국출판인산악회의 기조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천후로 간다.”는 모토(motto)에 걸맞은 행보이기도 하다.

지난 주에 효자리부터 위문까지 4.5Km를 걸었다. 그리고 오늘 위문부터 북한산성 입구 매표소까지는 정확히 10Km이다. 지난 주와 이번 주 합산하면 14.5Km가 된다. 이 거리가 결국 북한산성 성문 종주의 거리가 되는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북한산우이역(우이신설역)에서부터 위문을 거쳐 북한산성 입구 매표소까지의 거리 13.1Km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7시간에 걸쳐 산행하였다. 만약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을 더 투자하였더라면 효자리부터 시작하는 북한산성 성문 종주도 하루만에 완주하였으리라 생각되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북한산성 성문 종주는 대서문에서 시작하여 효자리를 거쳐 북한산성 성문을 종주하는 코스로 도전해보고 싶다.

지난 주부터 이번 주까지 모든 코스가 초행이었지만 무모하리라 할 만큼 과감한 행보가 있었기에 결국 성취한 것이다. 성취감은 고행이 클수록 더욱 강력한 것인가? 나 자신에게도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한국출판인산악회 회원에게도 축하 받고 싶었다.

하루 종일 내리는 비를 맞으며 감행한 산행은 무사무탈하게 마치게 되어 산신령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허진 대표님께서 보국문에서 합류하여 길안내를 자처하여 감사한 마음이고, 대남문에서 합류해주신 박찬익 회장님께도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카톡으로 위로, 격려, 응원해주신 회원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북한산성 성문 종주를 축하해 주신 회원님 감사합니다.

허진 대표님은 북한산성 성문 종주를 축하해준다며 고급 식당에서 최고로 맛있는 석식을 주문하고 후원해 주었다. 식사 후, 커피 볶는 집인 “마루니”에서 오늘의 자랑스런 행보를 회상하며 마시는 한 잔의 캬라멜 마끼야또에서 허진 대표님께 감동을 받는다. 오늘의 산행에서부터 그동안의 산행에서 체험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너무 흥미로웠다. 산사나이들의 동지애와 의리는 오래될수록 더욱 깊어짐을 느껴진다. 의리와 행복이 동시에 다가온 오늘이 바로 최고의 날이었다.

“옛날 토성”에서의 성문 종주 축하연

 

커피 볶는 집 “마루니”. 이곳에서의 캬라멜 마끼야또는 또 다른 별미. 허진 대표와의 의리 결속과 회포를 풀기에 적합한 분위기였으며, 2시간 이상의 대화가 이어졌지만 결국 쫓겨났다.

성 문
거리(Km)
거리 누계(Km)
효자리
   
1
서암문
0.6
0.6
2
북문
1.8
2.4
3
위문
2.1
4.5
4
용암문
1.2
5.7
5
대동문
1.5
7.2
6
보국문
0.6
7.8
7
대성문
0.6
8.4
8
대남문
0.3
8.7
9
청수동 암문
0.3
9.0
10
부왕동 암문
1.2
10.2
11
가사당 암문
1.2
11.4
12
대서문
2.3
13.7
북한산성 입구
0.8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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