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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인산악회

[1973회] 국토종주 한강나루길 2회차 산행기

by 출판N산악 2022.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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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회] 국토종주 한강나루길 2회차 산행기

◆ 걷기 코스 : 대방역(1호선) - 여의교 - 한강철교 - 한강대교 - 효사정 - 동작대교 - 잠수교(반포대교) - 한남대교 - 동호대교 - 성수대교 - 영동대교 - 청담대교 - 뚝섬유원지역(7호선)

◆ 걷기 일시 : 2021년 10월 25일 오전 10시 20분 ∼ 오후 3시 (5시간 40분 걷기)

◆ 날씨 현황(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 맑음. 온도(6∼18)

◆ 참석 인원 : 박성원 (계 1명)

◆ 상세시간

10:15 대방역(1호선) 6번 출입구

10:20 여의교 시점

10:53 한강철교

11:05 한강대교

11:09 한강수사자조혼비

11:25 ~ 11:35 효사정

12:05 동작대교

12:25 ~ 12:40 잠수교(반포대교), 중식

13:00 잠수교(반포대교) 북단

13:22 한남대교

13:39 동호대교

14:15 성수대교

14:53 영동대교

15:00 청담대교

15:00 뚝섬유원지역(7호선) 3번 출입구

1. 국토종주 한강나루길 2회차 안내

한국출판인산악회는 정기토요산행의 일정에 따라 2021년 10월 16일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5시 25분까지 3시간 55분 동안 대방역 6번 출입구에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여의교에서 출발하여 청담대교에 도착하였다. 이때 참석한 회원은 김옥영, 김현호, 박찬영, 오상환, 이미래, 이정수, 이정일, 임순재, 장호진, 최태경 등 모두 10명이 함께하였다.

하지만 본인은 이때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참석하지 못하였다. 국토종주 한강나루길은 여러 가지로 의미있는 걷기 길이므로 한 회라도 참석하지 못하면 먼 훗날 아니 당장 후회할 것이기에 빠른 시일 내로 걷기로 마음을 먹고 있던 차, 10월 25일에 홀로 걷기로 하였다.

이 산행기는 본인이 홀로 걷었던 것을 기록한 것이다. 기존의 회원이 참석한 사진은 산행첩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란다.

2. 한강나루길 산행기

지난 10월 16일의 한강나루길 산행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한강나루길은 한 회라도 누락하면 안 될 것 같아 홀로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실행한 날이 바로 10월 25일 월요일이었다.

대방역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 10시 15분, 홀로 걷는다는 것이 외롭긴 하지만 이 또한 즐기며 걷겠다고 다짐하며 한강 샛강을 가로지는 여의교 밑으로 내려갔다.

여의교에서 63빌딩을 배경으로......
한강 샛강. 노량진에서 살았던 초등학생 때 어느 여름날 이곳에서 놀던 기억이 새롭게 일어난다.

여의교 밑에서 목적지인 청담대교로 향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마음의 각오를 다진다. 그러면서 오늘 홀로 걸음에 있어 사진이 필요할 때 찍을 수 있는 자동 셀카봉의 브루투스 기능을 다시 한 번 더 점검하였다. 평일이어서인지 주말보다 여의교 밑에는 운동하거나 산책나오신 분이 별로 없었다. 사람의 왕래가 없으니 사진 찍기에는 더 좋았지 않았나 생각도 해본다. 여의교에서 출발한 시간이 오전 10시 20분이다.

63빌딩이 보이고,
유한양행 본사도 보인다.

여의교는 여의도의 샛강을 가로지르는 교량이다. 이 여의교에서 여의도를 지나 직진하면 한강 북안으로 원효대교가 나온다. 원효대교가 있는 자리를 조선시대에는 ‘용호(龍湖)’ 또는 ‘용산강(龍山江)’이라 불리었다.

서강이 황해도・전라도・충청동・경기도 등의 세곡이 모이는 곳이었다면, ‘용산강(龍山江)’은 경상・강원・충청・경기의 상류로부터 한강을 따라서 내려오는 수운의 종착지점이 되던 곳이었다. 서강과 용산강이 조세곡 운송의 중심지였다면 마포는 세곡이 아닌 일반 상품들이 모여서 매매하였던 상품유통의 중심지였다. 조선 전기에는 바닷물이 용산강까지 들어와 서해를 통해 조운선이 드나들었지만 용산강에 진흙이 쌓여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게 된 조선 후기에는 조운선이 서강까지 드나들었다고 한다.

‘용산강(龍山江)’에는 원효대교 놓여져 있다. 원효대교는 서울 용산구 원효로와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길이 1,470m, 너비 20m이며 민자에 의해 1981년 준공된 국내 최초로 디비닥공법(Dywidag工法)을 도입한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장대교량이다. 이 대교는 보상비 20억원과 공사비 225억원이 소요되는데, 보상비는 서울특별시가 부담하고 공사비 전액은 시공사인 동아건설이 부담하여 2001년까지 통행료를 받기로 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유료통행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동아건설은 1984년 서울특별시에 헌납하여 현재는 무료로 통행하고 있다.

유한양행 본사를 지나면, 노량진수산시장이 나온다. 내가 걷는 길에서는 노량진수산시장이 보이지 않아 88올림픽 자동차 전용도로 위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었다. 1927년 우리나라 최초로 서울역 근처 서대문구 의주로에 경성수산시장(주)라는 명칭으로 개장하였다. 광복 이후 1947년 4월 서울수산시장(주)로 명칭을 변경하여 영업하다 1971년 5월 정부 재투자기관인 한국냉장(주)에서 ADB차관으로 동작구 노량진동 현 위치에 도매시장을 건설하게 되었다. 1975년 4월 노량진 도매시장 활성화 방침에 의하여 의주로 시장은 폐쇄하고 동시에 노량진수산시장으로 상권이 이전되었다. 사진의 건물은 2016년 3월 16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된 신축건물이 개장했다. 구 시장건물은 강제로 철거되며 그 자리에는 동작구에서 운영하는 축구장과 야구장이 생긴다고 한다.

노량진수산시장을 지나면 한강철교가 앞에 보인다. 사진을 찍은 자리의 남쪽 노량진 방향으로 사육신묘가 있는 곳이다. 걷는 길에서는 사육신묘가 보이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사육신묘를 몰래 들어가 놀기도 하였다. 그 당시 사육신묘에는 정문이 허술하고 지키는 사람도 없어 철조망을 통해 들어가기도 하였다. 들어가 놀기 좋은 점은 당시 서울 어디에도 잔디가 귀해 없을 뿐 아니라 잔디가 있다하더라도 잔디를 보호한다고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렇게 만류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육신묘의 잔디가 누군가에 의해 정리를 하였는지 그 당시에는 잔디가 매우 부드러워 잔디를 밟는 느낌이 좋았다는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육신묘는 1691년(숙종 17년) 이곳에 민절서원(愍節書院)을 세우고 단종(端宗)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사육신의 충절과 의기를 추모하였으며, 1782년(정조 6년)에는 신도비(神道碑)를 세웠다. 1955년 서울시는 이 자리에 육각(六角)의 사육신묘비를 세우고 묘역을 수축하였다. 원래 이곳에는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유응부(兪應孚)만 묻혔으나, 1977∼1978년 사육신묘역 정화사업 때 하위지(河緯地)・유성원(柳誠源)・김문기(金文起)의 가묘(假墓)도 추봉(追封)하였다.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8호로 지정되었다.

사육신묘가 있는 자리를 지나면 한강철교가 나온다. 한강철교는 모두 4개였다. 이 밑을 지날 때 마침 기차와 지하철이 지나는데 천둥소리와 같이 너무 우렁차 귀가 멍멍할 정도였다.

한강철교는 용산구 서부이촌동과 동작구 노량진동을 잇는 한강 최초의 다리이다. 다리 건설은 1896년 3월 29일 미국인 제임스 모스가 경인철도부설권을 취득한 후, 1900년 7월 5일 단선(A선)으로 개통하였다. B선인 제2철교는 1911년 7월에 착수하여 이듬해인 1912년 9월에 준공되었다. 1913년에는 강형철거 및 교각일부를 개축하였고, 1925년 7월에는 대홍수로 축대가 유실되자 교량 구조물을 1m 높이기도 했다. 1944년 8월 1일에는 복선 철교(C선)를 하류 쪽에 하나 더 개설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폭파되었으나 1951년 4월에 착공하여 같은 해 6월 가복구하였다. 상류교량은 1952년 2월에 착공하여 6월에 가복구하였으며, 하류교량은 1952년 10월에 착공하여 1957년 7월에 완전 복구하였다. 1966년 2월 복구사업계획을 수립하고 한강철교 A · B선 복구와 경인복선화 건설공사를 1967년 8월 28일에 착공하여 1969년 6월 28일 완전 복구하였다. 1994년 12월에는 경인선 철도가 포화상태가 되어 A선과 B선 사이에 D선을 건설하였다. 이렇게 하여 모두 4개의 철교가 되었다.

한강철교를 지나면 노들섬과 한강대교가 보인다. 노들섬은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모래사장이 있어 여름에는 해수욕을 즐겼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한강철교를 바라보며 모래사장에서 해수욕을 즐겼던 것이다. 그 당시의 사진을 보면 나의 기억이 맞다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기도 하다. 아마도 1970년대 초까지 해수욕을 즐겼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하지만 동부이촌동에 위치한 한강중학교(지금은 중경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해수욕을 즐길 수 없었다.

노들섬은 한강대교가 통과하는 섬으로 많은 부분이 모래와 갈대가 많다. 조선 시대부터 물맛이 빼어난 우물물을 왕궁에 바쳐오던 노들섬은 1917년 한강인도교가 놓이면서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여름에는 수영장과 낚시터,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었다. 노들섬 안에는 1966년 낙하 훈련 중 순직한 육군 상사 이원등의 동상이 있다. 이 동상은 동년 6월 9일에 설립한 것이다. 노들섬에 갔을 때 이 동상을 본 기억이 난다. 또 노들섬이 특별하다는 것은 한강 결빙 관측장소이기 때문이다. 노들섬에 한강 결빙 관측장소 표지석이 있는데, 1906년부터 정부에서 한강의 결빙상태를 확인하는 곳이다. 이 장소에서 바라봤을 때 한강대교의 노량진 쪽에서 두 번째, 네 번째 교각 사이 상류쪽 100미터 부근 공간이 남북간 띠 모양으로 완전히 얼었을 때를 결빙되었다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노들섬에서 수상스키를 즐기는 동호인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한강대교가 나온다. 한강대교가 있는 노량진 방향에서 한강을 ‘노들강’이라고 불리었다.

한강대교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와 동작구 본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이 대교는 1900년에 건설된 한강철교 이후 최초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로 건설된 것이다. 이 때문에 개통 초기에는 제1한강교라고 불리었다. 1912년에 착공하고 1917년 10월에 준공되었다. 1979년 1월에는 신교를 지어 4차선을 8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시작하였고, 1982년 2월 27일에 완공되어 쌍둥이다리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2017년 10월에 완공 10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2020년 9월 10일에는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도가 국가등록문화재와 시・도등록문화재로 나눈 후, 처음으로 서울특별시에서 등록문화재 제1호로 등록하게 되었다.

한강대교 옆에는 “한강수사자조혼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강수사자조혼비(漢江水死者弔魂碑)는 한강에 빠져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1929년 7월 용산경찰서 및 철도국을 출입하는 ‘용산기자단’에서 높이 2미터의 큰 비석을 세운 것이다. 1910 ~ 1920년대에 한강 다리 건설 공사와 홍수가 많았는데, 특히 1925년 대홍수에서만 사망자수가 자그마치 647명이나 이르렀을 정도로 매우 심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용산기자단'에서 1922년부터 매년 위령제를 지내다 비석을 세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방치되어있다가 1970년대 경 홍수로 인해 쓰러졌고, 1985년 한강 인명구조대원인 김평산 씨가 넘어진 비석을 다시 세웠다고 한다.

한강대교에서 동작대교로 향하다보면, 나무가 많은 언덕이 나온다. 언덕 위에는 지레 짐작으로 효사정이 있다고 생각되어 천천히 찾아가보니 아니라 다를까 효사정이 있었다. 한참 데크 계단으로 올라야하지만 효사정에서 바라보는 한강 또한 절경이라 생각되어 효사정도 보고 한강을 감상하려 일부러 효사정까지 올라갔다. 효사정의 설명은 안내도로 대신한다.

효사정에서 내려와 다시 동작대교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였다. 동작대교로 향하는 곳에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홀로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었으며, 새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겨본다.

동작대교 가기 전에 반포천이 보인다. 반포천은 한강의 제1지류로 서초구 우면산에서 발원하여 서초동, 논현동을 거쳐 지류인 사당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국일천(菊逸川), 반포천(蟠浦川), 서릿개라고도 한다. 지금은 거의 복개되어 있다. 길이는 7㎞로 하천의 기능은 상실하고 하수도 역할로 변모하였다.

동작대교에 다달았다. 동작대교에는 ‘반포구조대119’가 있었다. ‘반포구조대119’의 동작대교와 남산을 배경으로 셀카봉을 들고 사진을 찍으려니 잘 나오지 않는다. 희미하게나마 남산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잠수교로 향했다.

동작대교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과 서초구 반포동을 연결하는 한강에 있는 다리이다. 조선시대 이곳에 동작나루가 있었기 때문에 다리 이름을 동작대교라고 하였다. 대우건설이 1978년 10월 16일 착공하여 1984년 12월 29일 준공하였다. 수도권 전철 4호선 철도교를 중심부에 두고 양 쪽으로 3차선 도로로 이루어진 복합교량으로 이촌역과 동작역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다리이다. 한강 다리 중 11번째로 개통하였다. 한강의 5번째 철교로서, 구조가 유사한 동호대교와 같은 날에 개통한 것이다. 동작대교 건설 당시 용산구에 있던 미군기지를 이전하고 기지 부지를 통과하는 도로를 건설, 후암동으로 연결하여 서초동 - 반포동 - 동부이촌동 - 후암동 - 남대문 - 시청 -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간선도로를 건설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었으나, 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중단되면서 동작대교는 다리 북단이 끊어진 형태를 띠게 되었다. 폭 28.6m, 길이 1,245m로 경간 수는 19개이다. 다리 상판을 철재 상자형 강상판을 사용하여 특수도장을 함으로서 반영구적인 시설물로 건설하였고, 난간은 알루미늄으로 하여 녹슬지 않도록 하였다. 교량 이음새는 유지관리와 승차감을 높이기 위해 합성고무 연결방법을 사용하였고, 철도교량과 병행하는 랑거아치(langer Arch)로서 조형미를 갖춘 다리이다.

동작대교를 지나 잠수교로 향하는데 ‘서래섬 나들목’이 나온다. 서래섬은 반포한강공원에 있는 인공 섬으로, 1980년대에 올림픽대로 건설 및 한강 종합개발을 하면서 조성된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비슷한 위치에 반포섬이라는 섬이 있었다.

‘서래섬 나들목’을 지나니 잠수교가 나온다. 이곳이 ‘반포한강공원’이다. 이곳에 도착하니 낮 12시 18분이었다. 여의교에서 거의 2시간을 걸었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기위해 편의점에서 몇 가지의 빵과 음료를 구매하였다. 약 20분의 중식 겸 휴식을 취한 후, 목적지인 청담대교로 향했다. 이때 문제가 발생하였다. 핸드폰 건전지를 충분히 충전시켜 놓았다고 생각하였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으며, 보조 건전지도 충전시켜 놓지 못했던 것이다. 핸드폰도 꺼지고 보조 건전지도 더 이상 효용이 없게 되었다. 마침 항상 휴대하고 다닌 보조 핸드폰이 있어 다행이었다. 잠수교를 건넌 후부터는 주 핸드폰이 아닌 보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게 되었다. 보조 핸드폰의 사진은 주 핸드폰의 사진보다 사이즈가 조금 다르게 나오긴 하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다. 회원들은 잠수교를 건너지 않고 남쪽의 고수부지를 통해 청담대교 남쪽을 향했지만 나는 잠수교를 건너 청담대교 북쪽을 향해 가기로 하였다. 그 이유는 청담대교 북쪽에 인증할 수 있는 도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잠수교를 건넌 시간이 오후 1시였다. 이제부터 한강을 남안에서 걷는 것이 아니고 북안에서 걷게 되었다. 잠수교에서 약 10분을 걸으니 ‘보광 나들목’이 나온다. 신라 진흥왕 때 보광국사(普光國師)가 세운 사찰이 있다고 해서 유래된 보광동은 다른 지역에 비해 민속신앙이 활발한 곳으로 점(占)집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보광 나들목’에서 쉬지 않고 걸으면 약 7분 후에 ‘한남 나들목’이 나온다. 한남동은 남쪽에 한강이 흐르고 서북쪽으로 남산이 있으므로 한강의 ‘한’자와 남산의 ‘남’자를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한남 나들목’을 지나면 한남대교가 나온다. 한남대교가 있는 곳이 ‘한강도(漢江渡)’이다. 한강은 본래 서울의 남산 기슭 지금의 한남동 앞의 강을 일컫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강도는 한강나루라는 뜻으로 한강진이라고도 하였다. 강안 맞은편은 사평나루로, 고려 때는 사평도 또는 사리진으로 불렀다. 조선시대는 제일의 나루터로 판교역을 지나 용인 · 충주로 통하는 대로의 요충지였다. 그리하여 국초부터 이곳에는 별감(후에 도승)이 파견되어 인마의 통행을 기찰하고 통행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한남대교에서 천천히 걸으면 약 15분 후에 동호대교에 도착한다. 동호대교(東湖大橋)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명칭은 다리의 북단에 있었던 동호나루터에서 유래하였다. 수도권 전철 3호선 철도교를 중앙에 배치하고 좌우로 2차선 도로가 위치한 복합교량 방식으로 1980년 6월 착공하여 1985년 2월 2일 준공되었다. 이 다리는 수도권 전철 3호선의 옥수역과 압구정역을 연결하며 동작대교와 구조가 유사하다. 한강에서 15번째로 만들어진 다리이며 길이는 약 1.2km이다.

이 동호대교의 강남구가 바로 압구정동이다. 이 동은 한명회가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동호대교부터 중랑천이 나오는 두모포(豆毛浦)까지를 옛날에는 동호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난 동호를 바라보며 응봉산 밑의 무모포로 향해 걸었다. 가는 길에는 공사하 한창인 ‘옥수 나들목’이 나온다. 옥정수(玉井水)라는 유명한 물이 있어 옥정숫골이라는 마을 이름이 옥수동으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저자도의 설명은 안내도로 대신 한다.

중랑천으로 향하는 길에는 ‘금호 나들목’을 지난다. 금호동에는 옛날 이곳에 선철(銑鐵)을 녹여 무쇠솥, 농기구 등을 주조했으므로 무쇠막 무시막 또는 무수막이라고 했는데, 이름 한자명으로 수철리(水鐵里)라고 하였다. 수철리란 동명은 현 마포구의 신수동, 구수동도 수철리라 부르고 있어서 이와 구분하여 인근 주민들이 수철리의 철(鐵)에서 금(金)을, 수(水)에서 호(湖)를 인용하여 이곳을 금호, 또는 동무수막이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금호 나들목’을 지나면 응봉산 밑을 지난다. 성동구 사이트에 의하면 응봉산은 응봉동과 금호4가동에 위치한 산으로 한강, 뚝섬나루, 강남의 압구정이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으며 또한 우수한 야경까지 즐길 수 있는 명소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매년 3 ~ 4월 경에는 개나리축제를, 1월 1일에는 해맞이 행사를 실시해 다채로운 체험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응봉산 밑에는 중랑천이 흐르고 있다. 중랑천은 경기도 양주시 불국산에서 발원하여 시의 장암동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의 성수교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명칭은 이곳이 도봉산의 산줄기와 봉화산이 만나는 경계선으로 대나무의 잎과 가지가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물결에 비유한 죽랑(竹浪)을 소리 나는 대로 쓰다 보니 가운데 물결이란 전혀 의미 없는 이름이 된 것이라고 한다. 중랑천은 큰 물줄기라는 뜻으로 ‘한천(漢川)’이라고도 하며, 한강의 바로 위쪽에서 흐르는 큰 물줄기라는 뜻으로 ‘한내’라고도 한다.

중랑천을 건너고 성수대교로 향하는 뚝섬 초입에 정자가 놓여져 있었다. 정자 뒤쪽에는 관악산이 보여 사진을 찍어 보았다. 동호대교에서 이곳까지를 옛날에는 동호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이제부터가 뚝섬의 초입이다. 잠수교 북안에서 이곳까지 평일이어서인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적고 산책하는 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하고부터는 자전거 타는 사람과 산책이나 운동하는 분이 많아 보였다. 이곳이 바로 뚝섬 초입이자 ‘서울숲’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뚝섬은 태조 때부터 임금의 사냥터였던 곳으로 임금의 행차 시에는 그것을 알리는 대장군의 기인 독기를 세워 그것을 알렸다. 중랑천과 한강이 합류되는 지점으로 지형의 형태가 주변으로 강이 흘러 마치 섬 모양 같다고 하여 독기를 세운 섬 뚝섬이라 부르게 되었다. 1908년 대한민국 최초 정수장이 세워졌으며, 1940년 뚝섬유원지, 1954년 한국마사회가 서울경마장을 설치하였고, 1986년 체육공원으로 변천해 왔다. 이후 1989년 서울경마장이 과천으로 이전, 뚝섬경마장이 폐쇄되었다. 2003년 1월 10일 ‘서울숲’ 조성방침이 수립되어 2005년 6월 18일 개장했다.

‘서울숲’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1가 685번지 일대에 있는 공원이다. 본래 골프장과 경마장이 있던 곳으로,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사업비 약 2352억원을 들여 2005년 6월에 완성한 것이다. 면적은 1,156,498m2 (약 35만평)이며, 테마공원 5개로 구성되어 있다. 한강과 중랑천이 공원 근처를 흐른다. 마포구 월드컵공원 (100만평)과 송파구 올림픽공원 (50만평)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큰 공원이다.

뚝섬 초입에서 천천히 걷다보니 어느새 성수대교에 다다른다. 성수대교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길이 1,161m, 너비 35m의 8차선 다리이다. 한강의 11번째 다리로 1977년 4월 착공하여 1979년 10월 16일 최초로 준공하였다. 1994년 10월 21일 아침 7시 40분, 다리의 북단 5번째와 6번째 교각 사이 상판 50여m가 내려앉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하여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기도 하였다. 붕괴 사고 이후 새롭게 복구된 성수대교는 종전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른 실질적으로는 새 교량이라고 할 수 있다. 붕괴 사고로 인한 부정적인 국민 정서를 감안하여 기존 교량의 색상이 하늘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하부 기초 또한 폭 10m, 길이 27m의 타원으로 묶어 크게 보강하였고 상부 구조는 새로운 자재로 가설되었다. 특히 사용된 자재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지진에도 대비할 수 있게 설계하는 등 종전의 교량에 비해 안정성이 대폭 개선되었다.

성수대교를 지나면 앞으로 가야할 대교는 영동대교이다. 멀리서 영동대교를 사진으로 찍으니 영동대교 뒤로 롯데월드타워가 커다랗게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남한산성까지 보인다. 영동대교로 향하는 곳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어 올라가 보았다. 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은 또 다른 멋을 보여주었다.

전망대에서의 한강 관람으로 잠시나마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았다. 한강도 이렇게 아름답구나!!! 현재의 모습보다 옛 모습이 더 아름다웠으리라 상상하며 난 나의 목적지로 향했다.

전망대에서 잠시 걸으니 ‘성덕정 나들목’이 나왔다. ‘성덕정터’ 안내판에는 성덕정(聖德亭)은 조선시대 임금이 나와서 말을 기르는 것과 군대의 훈련을 지켜보던 정자이다. 이곳이 경기도 고양군에 속하였을 당시에는 둑도면 사무소 자리였다. 이곳에는 수령이 약 500여 년에서 600여 년 되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고 설명해 놓고 있다. 현재의 위치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 1가 10번지이고, 지금의 천주교성당 자리이다. 자유당 시절 이기붕이 면사무소 터를 천주교회에 매도함으로써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성덕정(聖德亭)의 ‘성(聖)’자와 뚝섬수원지(水源池)의 ‘수(水)’자를 따서 성수동(聖水洞)이란 동명을 지었다고 한다.

‘성덕정 나들목’에서 4분을 걸으니 ‘수레나루 나들목’이 나온다. ‘수레나루 나들목’에서 또 6분을 걸으면 ‘한신아파트 나들목’이 나온다. ‘한신아파트 나들목’에서 또 다시 2분을 걸으면 ‘청구아파트 나들목’이 나오기도 한다. ‘청구아파트 나들목’ 옆에 설치되어 있는 법정스님과 나룻배의 이야기를 담은 안내판을 읽기도 하였다.

‘청구아파트 나들목’에서 약 6분을 걸으면 ‘뚝섬나루터’임을 알리는 비석을 만나게 된다. 이 비석으로 이곳이 ‘뚝섬나루터’을 확인시켜 주었다. ‘뚝섬나루터’ 비석을 보니 반갑기는 하였다. 하지만 옛 풍경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사라지고 인공적인 조형물만 남아 아쉽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인공물은 또 변화고 변화여 또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 먼 미래가 궁금하기도 하였다. ‘뚝섬나루터’을 만난 시각인 오후 2시 52분이었다. 이제 나의 한강나루길 2회차가 슬슬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뚝섬나루터’ 비석 옆에는 바로 영동대교가 놓여져 있다. 영동대교(永東大橋)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광진구 자양동과 강남구 청담동을 잇는 총연장 1,065m의 한강 다리이다. 폭 25m, 총길이 1,065m이며 6차선 도로와 인도를 갖춘 이 대교는 1970년 8월 13일 착공하여 3년 3개월만인 1973년 11월 8일에 완공하였다. 영동(永東)이라는 명칭은 영등포의 동쪽에 있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1970년대 강남 개발 당시에 강남이라는 이름이 자리 잡기 전 붙여진 이름이다.

나의 한강나루길 2회차를 마무리하려면 영동대교 밑을 지나자마자 “자전거 행복나눔”에서 설치해 놓은 ‘뚝섬전망 콤플렉스 인증센터’까지 가야한다. 그리고 ‘뚝섬전망 콤플렉스 인증센터’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또 패스포드에 스탬프를 찍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뚝섬전망 콤플렉스 인증센터’을 배경으로 나의 인물사진을 찍어야 한다.

대방역에 위치한 여의교에서 오전 10시 20분에 출발하여 영동대교의 ‘뚝섬전망 콤플렉스 인증센터’를 지나고 청담대교까지 오후 3시에 도착하였다. 약 4시간 40분이 걸린 외로운 홀로 걷기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즐겁고 뿌듯한 하루였다. 언제 또 이렇게 한강을 맞이하며 걸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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