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회] 청계산 산행기
◆ 산행 코스 : 청계산입구역(신분당선 2번 출구) – 깔딱고개 – 헬기장 – 돌문바위 – 특전사 충혼비 – 매바위(578m) – 매봉(582.5m) – 혈읍재 – 옛골 – 청계산 정토사 – 옛골 토성 – 4432번 버스 승하차 - 양재역
◆ 산행 일시 : 2020년 6월 27일 오후 1시 30분 ∼ 오후 5시 50분 (4시간 20분)
◆ 날씨 현황(서울) : 맑음. 온도 - 최저 20도 ∼ 최고 30도
◆ 참석 인원 : 김현호, 박성원, 오상환, 이정수, 최태경 (계 5명)
◆ 안내자 : 최태경 고문
◆ 상세시간
13:30 청계산입구역(신분당선 2번 출구).
13:38 원터돌 입구.
13:43 청계산 안내도(김현호 합류). 최태경 안내자, 코스 설명.
14:05 쉼터. 단체사진. 원터골 입구 700m.
14:35 매봉 계단(매봉 헬기장 800m) 또는 매봉 우회로(매봉 헬기장 1000m) 갈림길. 원터골 입구 1400m.
14:51 헬기장 도착. 원터골 입구 2400m, 매봉 600m.
14:51 ∼ 14:58 7분 휴식.
15:05 돌문 바위.
15:09 특전사 충혼비.
15:14 매바위(578m).
15:14 ∼ 15:38 24분 휴식.
15:40 매봉(582.5m).
15:40 ∼ 15:55 15분 휴식.
16:04 매봉 전망. 매봉 0.62Km, 옛골 3.0Km.
16:11 ∼ 16:23 12분 휴식.
16:24 혈읍재. 매봉 0.7Km, 옛골 2.4Km.
16:26 쉼터.
17:13 이정표. 혈읍재 1.2Km, 옛골 1.8Km.
17:24 군부대 후문. 아스팔트 길. 혈읍재 1.6Km, 옛골 1.6Km.
17:29 이정표. 옛골 1.3Km, 망경대 2.5Km.
17:46 옛골 코스 시점(종점).
17:50 먼지털이 기계.
17:56 청계산 정토사.
18:02 고속도로 터널 벽. 청계산 매봉.
18:06 옛골 토성(02-578-0808). 석식.
19:15 옛골 버스정류장. 4432버스 승차.
19:35 양재역. 4432버스 하차.
1. 청계산 소개
청계산은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청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짐작될 뿐 확실한 기록은 없다. ‘과천읍지’(1899년) 산천조에 청룡산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관악산을 백호산이라고 부른데 대하여 청계산이 좌청룡에 해당된다는 풍수설에 따라 청룡산이라고 부르게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다만 청계산이란 이름은 이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맑아 우선 “청계”라는 이름이 붙고 그러한 내를 지닌 산이어서 나온 이름이 아닌가 짐작될 뿐이다. 이 산의 주봉은 망경대(望京臺)에서 흐르는 물줄기 하나가 서쪽 막계동 골짜기를 이루는데 이것이 한자식 표기가 莫溪淸溪인 점으로 미루어 내 이름에 따라 붙여진 산 이름일 것으로 보인다. 청계산은 淸溪山외에 淸鷄山・淸淸山 등으로도 나오지만 이는 기록한 이의 잘못이 아닌가 여겨진다.
청계산 북동쪽 기슭은 신사시대 주민들의 생활근거지로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산재해 있으며, 고려 멸망 후 이색, 길재, 조윤 등 고려 유신들이 은거했던 곳으로, 청계산의 주봉을 망경대라 부르는데, 이는 고려가 망한 뒤 고려 유신 조윤이 청계산 정상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허망함을 달랬다는 데서 유래하고 조선 말기에는 노년의 추사 김정희가 긴 유배생활에서 돌아와 부친의 여막을 지키면서 살았던 곳이다.
청계산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성남시・과천시・의왕시의 경계에 따라 위치해 있으며 매봉을 중심으로 서쪽의 경기도 청계산지역과 동쪽의 서울특별시 청계산지역으로 구분된다.
산세는 서남쪽으로 의왕시에 소재한 백운산・모락산・오봉산으로 뻗쳐 있고, 서북쪽으로 과천시 옥녀봉 자락과 이어져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청계산은 국사봉(540m), 망경대(618m), 청계산(583m) 및 옥녀봉(375m)을 이어 남북으로 달리는 능선과 국사봉을 정점으로 하여 동서방향으로 달리는 능선이 만나 T자형 능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계곡은 이와 같은 T자형 능선을 기점으로 하여 동서방향과 남쪽방향으로 발달해 있습니다.
청계산의 모암은 호상흑운모편마암과 세립질편마암이 각각 약 45%씩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우백질편마암, 화강암질편마암, 산성암맥 및 석회암이 국지적으로 출현하였으며, 저지대의 경작지 인접지역에는 충적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암의 특성상 풍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깊이가 깊고 입자가 고운 갈색 산림토양이 형성되고 있습니다.(서초구청 사이트 참조 - https://www.seocho.go.kr/site/seocho/04/10405010701002015072403.jsp)
2. 청계산 산행기
2020년 6월 넷째 주인 27일, 기상청 예보는 서울의 온도가 최저 20도에서 최고 30도였다. 이번 주부터 시작된 장마로 몇 일전에 내린 비의 영향인지 지난 주보다 최고 온도가 오히려 내려갔다. 하지만 장마철이라고 해도 온도가 올라갈 때는 30도를 넘겨 온열질환에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날씨였다.
이번 주 산행은 청계산으로 계획하고 ‘Slow Walking’으로 회원 간의 친목을 더 다지는 계기로 삼기로 하였다.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으로 환승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최태경 고문님을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청계산입구역에 도착하니 정각 1시, 10분 후에 이정수 감사께서 참석하시고, 미리 도착하셨던 오상환 부회장님, 그리고 청계산 원터골 입구에서 김현호 사장님을 만나 모두 5명이 청계산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청계산이 초행인 저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였다. 산악회의 정기토요산행 공지에는 박성원으로 게시하였으나, 아무래도 경험이 많은 분이 안내하는 것이 편리할 것 같아 최태경 고문께 부탁하였다. 흔쾌히 수락해주신 최고문께서 청계산 입구에 설치된 안내도를 보시고 오늘의 일정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오후 1시 43분, 청계산 입구에서 매봉을 향해 출발한다. 청계산은 지금까지 다녔던 산보다 여러 가지가 다른 점이 있었다. 산악회에서 갔었던 곳인 수락산, 북한산, 호명산, 예봉산 등에서는 산악회나 동호회 또는 친구인 동년배들이 많이 보였다면 이 청계산은 가족이나 연인 등이 더 많이 눈에 띄는 느낌이다. 아마 청계산은 사전에 계획하고 체력으로 산행하며 즐기는 산이라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산행하고 싶을 때 찾는 곳이며 게다가 천천히 음미하며 걷는 산행에서 힐링하려고 할 때 찾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 2시 5분, 첫 번째 휴식처가 나온다. 몸의 열기는 후끈 달아올라 벌써 땀에 젖는다. 잠시 쉬면서 환복도 하고, 냉수로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는다.
마침 홀로 정상에서 내려오는 멋진 옷차림과 세련미 넘치는 50대 여성에게 단체 사진을 부탁하였다.
오후 2시 35분, 매봉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직선으로 올라가면 계단이고, 매봉 헬기장까지 800m 거리다. 우회로는 평탄한 길인 것 같은데, 매봉 헬기장까지 1000m 거리다. 난 과감하게 좀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계단길을 택한다. 이곳의 이정표를 보니, 알게 모르게 원터골에서 1400m를 걸어 올라온 것을 알게 되었다.
오후 2시 51분, 헬기장에 도착한다. 이 헬기장은 원터골에서 2400m 올라온 곳에 있다. 매봉까지는 600m 거리다.
쉼터에서 오상환 부회장과 김현호 사장께서 먼저 출발하시고, 중간에 내가, 후미로 최태경 고문과 이정수 감사께서 출발하였다. 내 입장에서 오부회장과 김사장을 만나고자 헬기장까지 거의 쉬지 않고 올라왔다. 그런데 이곳에 오부회장과 김사장을 만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난 얼음물을 마시고,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매봉으로 향했다.
오후 3시 5분, 돌문바위에 도착한다. 청계산의 정기(精氣)를 듬뿍 받고자 돌문을 통과해 본다. 이곳에서 지나가는 데이트 연인에게 인증사진을 부탁하여 한 컷 남겨놓는다.
인증사진을 남겨놓은 후, 매봉으로 향하는 곳에 특전사 충혼비가 있다. 이곳에 들러 특전사의 용맹함을 다시 한 번 더 새겨본다.
세계 최강의 특전부대 용사로 거듭나기 위한 공수기본 250기 대원들은 3주간의 지상 훈련을 마치고 1982년 6월 1일 자격강하를 실시하기 위해 공군 수송기에 탑승하였다. 서울시 거여동 소재 강하장으로 이동하던 중 짙은 안개로 방향을 잃은 공군 수송기는 청계산 상공을 비행하던 중 추락하였고, 당시 수송기에 탑승하였다가 사망한 특전교육단 장병 및 교육훈련 기간 중 순직한 영령 53인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며,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충혼비를 청계산에 건립하였다. 이들 53인(특전교육단 교관 5명, 교육생 44명, 공군부대원 4명)의 유해는 서울시 동작구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서울현충원의 31, 32번 묘역에 안치되어 있다.
오후 3시 14분, 매바위에 도착한다. 이곳에 쉼터에서 먼저 출발하신 오부회장과 김사장께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에 두 분이 안 계신다. 오부회장께 전화드리니, 매바위로 가고 있는 중이란다. 왜 내가 오면서 못 보았는지? 여쭤보니 내가 부회장을 보지 못하고 올라가더란다. 이곳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분당, 성남, 성남 비행장, 내곡동, 양재, 과천 등을 조망하면서 일행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재생 수9
00:00 00:22
매바위에서 일행을 기다리니, 먼저 김현호 사장께서 올라오시고, 이어 이정수 감사께서 올라 오셔 기념사진을 찍어 놓았다.
오후 3시 40분, 최정상인 매봉(582.5m)에 도착한다. 원터골에서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하였으므로 정확히 2시간 10분이 걸렸다. 올라올 때는 올라가는 등산객보다 내려가는 등산객이 많은 줄 알았는데, 막상 정상에 도착하니 많은 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매봉을 중심으로 인증 사진을 찍으려니 줄을 서며 기다리는 등산객이 있어 좀 더 기다리고 있던 중, 최태경 고문께서 ‘설레임 밀크쉐이크’를 사 오신다. ‘설레임 밀크쉐이크’로 숨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매봉 입석의 뒷면에 새겨진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란 시를 보게 되어 “행복”에 대해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 본다.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 마는
머리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거졌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되노라
유치환의 시 『행복』 중에서...>
이 시는 유치환 시인이 쓴 “행복”이라는 시로, 1957년 문성당 출판사에서 발행된 “청마시집”에 수록된 것이다. 유치환님의 묘비에도 새겨져 있으며,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상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되노라
나종 죽어 서럽잖이 더욱 행복함은
하늘 푸른 고향의 그 등성이에
종시 묻히어 누웠을 수 있음이어라“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유치환님의 “행복”이란 시는 1965년에 발표된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라는 시집에 수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유치환님의 “행복”이란 시는 2개가 있는 것이다. 우리 일반인의 행복을 아름답게 잘 표현하였기에 전문을 수록해 놓고 기회가 될 때마다 읽고 또 읽고 싶다. 행복의 농도가 더 짙게 느껴지는 것은 유치환님이 연인인 이영도에 대한 사랑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썼던 것이므로 더 더욱 행복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시인의 영향인지 “행복”이란 화두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잠시 온 길을 되돌아보니 매봉이 보인다. 그 매봉을 마지막으로 보며 머리를 비우고 혈읍재로 힘차게 나아간다. 혈읍재로 향하는 코스에도 험난한 바위길이 있어 빠른 속도로 회원을 찍어 놓았다.
오후 4시 24분, 혈읍재에 도착한다.
조선 연산군 때 유학자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 선생이 무오사화로 부관참시 당하였다는 소식에 은거지인 금성수(하늘샘)로 가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며 넘어다녔다는 고개이다. 이수봉은 정여창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때 이 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고 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명명하였다.
이곳 혈읍재는 매봉에서부터 0.7Km 떨어져 있으며, 이수봉은 2.0Km, 옛골은 2.4Km 였다. 우리는 이 혈읍재에서 옛골로 내려간다.
이제부터 옛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아쉬움이 반, 안심이 반인 하산길이다. 무더운 날씨에도 4분의 발걸음이 별 무리 없이 내려가시게 되어 참석해 주시어 감사한 마음도 있다. 내려가는 목적지까지 무사무탈하게 도착하기를 속으로 빌어 보기도 한다.
오후 4시 26분, 옛길로 내려가는 쉼터에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매봉에서부터 한 시간을 걸어 내려오니 갈증과 시원한 계곡이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최고문께서 준비해 온 보리수 열매를 기꺼이 꺼내 놓으시곤 맛만 보라고 하신다. 이 보리수는 서양 보리수라고 한다. 이감사께서는 보리수는 원래 좀 쓴 편인데, 이 보리수는 그렇게 쓰지 않다고 하시며, 맛이 좋다고 하신다.
오후 5시 24분, 군부대 후문에 도착한다. 이곳에 도착하니 아스팔트길이다. 난 이 시간이 오늘의 마무리인줄 알았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계속 옛골로 내려가니, 옛골 코스 시점의 이정표도 나온다.
옛골 시점의 이정표에 조그마한 폭포가 눈에 띄어 동영상으로 담아본다.
재생 수9
00:00 00:11
아스팔트 길을 따라 25분을 걸으니 옛골 종점에 먼지털이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등산복과 등산화에 묻은 먼지를 털어냄으로써 오늘의 산행은 종결되었다.
우리의 산행은 모두 마무리 되었지만 저녁 식사를 하는 곳까지 한참 걸어야만 했다. 가는 곳에 마침 보리수 나무가 있어 이감사께서 "이 나무가 보리수다!"라고 알려주신다. 얼른 사진으로 담아놓았다.
청계산 정토사를 지나고, 고속도로 터널도 지난다.
드디어 식사하는 곳에 도착하였다. 이번에도 단돌집이다. 물론 나는 처음이지만...
‘옛골 토성’의 정문은 우리의 전통 기와집이라 정감이 더해진다. 안으로 들어가니 예상 밖으로 매우 많은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곳에서도 사진을 부탁하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사진을 찍어주는 종업원의 자세가 묘해 찍히는 모습과 찍는 모습이 서로 바뀐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여서 우리와 종업원이 함께 크게 웃었던 기억이 새롭다.
2020년 6월 27일, 6월 넷째 주 산행은 모두가 ‘안내자’였고,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에서와 같이 모두가 ‘행복인’이었다. 맹위를 떨치는 무더위 속에서도 기꺼이 참석해 주신 최태경 고문, 이정수 감사, 오상환 부회장, 김현호 사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참석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원터골에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코스로 계획하고 싶다. 회원 여러분의 성원과 참여율이 높아질수록 한국출판인산악회의 행복 농도가 더욱 짙어지리라 믿는다.
'한국출판인산악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07회] 북한산 산행기 (0) | 2022.05.13 |
---|---|
[1906회] 통고산 산행기 (0) | 2022.05.12 |
[1903회] 남한산성 산행기 (0) | 2022.05.11 |
[1902회] 호명산 산행기 (0) | 2022.05.11 |
[1901회] 무의도・소무의도 섬산 산행기 (0) | 2022.05.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