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회] 아차산・용마산・망우산 산행기
◆ 산행 코스 : 아차산역(5호선) 2번 출입구 – 아차산 입구 - 아차산성 – 아차산 4보루 – 제2 헬기장 – 제3 헬기장 – 용마산 5보루 – 망우산 1보루 – 망우산 2보루 - 망우산 3보루 – 망우리 관리사무소 – 양원역(경의중앙선)
◆ 산행 일시 : 2020년 12월 5일 오후 1시 03분 ∼ 오후 5시 23분 (4시간 20분 산행)
◆ 날씨 현황(서울 광진구 구의동) : 구름. 온도(-2∼7)
◆ 참석 인원 : 박성원, 부길만, 오상환, 이정수, 이정일, 최태경 (계 6명)
◆ 안내자 : 이정수
◆ 상세시간
13:03 아차산역(5호선) 2번 출입구
13:24 아차산 입구. 아차산 비석, 아차산 종합안내도
13:30 아차산 산행 들머리.
13:40 ∼ 13:50 아차산성 망대지. 아차산 정상 1.29km
14:00 ∼ 14:05 한강 전망대.
14:10 ∼ 14:13 범굴사 및 아차산 4보루 데코 계단길. 3분 계단 오르막.
14:18 범굴사(구 대성암)
14:48 ∼ 14:52 한강 전망대. 휴식
14:59 No.10. 관리사무소까지 2000m.
15:01 No.11. 관리사무소까지 2200m.
15:02 ∼ 15:07 아차산 4보루.
15:12 No.12. 관리사무소까지 2400m.
15:17 No.13. 관리사무소까지 2600m.
15:22 제2 헬기장. 망우산으로 직행.
15:23 No.14. 관리사무소까지 2800m.
15:26 No.15. 관리사무소까지 3000m.
15:27 제3 헬기장.
15:38 용마산 5보루.
15:41 ∼ 15:47 용마산 깔딱고개. 570계단 내리막길.
15:57 망우산 1보루.
16:08 ∼ 16:17 동락정 휴식.
16:27 망우산 2보루. 데크 조성.
16:33 망우산 3보루.
16:37 역사의 전망대
16:54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힌 유명인사 사진 전시장.
16:58 망우리 관리사무소
17:00 저녁노을의 남산.
17:11 ∼ 17:17 쉼터 휴식.
17:19 양원역 전경
17:22 망우산 날머리.
17:23 ‘남한강 물고기’ 식당 석식
19:01 양원역, 경의중앙선 문산행 탑승 해산.
1. 아차산・용마산・망우산 소개
[아차산(峨嵯山)]
아차산(해발 295.7m)은 인근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남쪽으로 한강 이남 지역, 북쪽으로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같은 입지적 조건으로 삼국시대에 치열한 격전지가 되었으며, 아차산성과 고구려 보루군은 아차산이 갖고 있는 역사적 중요성을 대표하는 유적이다.
아차산성(사적 제234호, 지정일 1973.5.255)은 아차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백제 책계왕 원년(서기 286년) 고구려를 대비하기 위해 수리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백제가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백제와 고구려, 신라는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아차산성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이곳에서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군에 의해 처형당하고, 고구려의 온달장군이 전사했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1997년과 1998년 두 차례의 부분적인 조사결과 축조방식과 유물을 통해 신라가 쌓은 「북한산성」임이 확인되었으나, 전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질 경우 아차산성에 대한 보다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차산보루군(사전 제455호, 지정일 2004.10.27.)은 고구려가 475년 한성 백제를 멸망시킨 후, 한강유역 방면으로의 진출로 확보와 남한 지역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 기지로서 활용하기 위해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일대에 쌓은 군사시설이다. 보루는 둘레 100∽300m 내외의 작은 규모의 성곽을 이르는 말로, 10∽100여명의 소규모 부대를 주둔시킬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아차산 일원에서 20여기의 고구려 보루가 확인되었고 이 중 17개소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아차산역 및 광나루역 방향의 아차산 입구의 종합안내도 참조)
[용마산(龍馬山)]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동과 중곡동, 중랑구 면목4동 사이에 있는 산으로 별칭 '장군봉(將軍峰)' 또는 '용마봉(龍馬峰)' 이라고도 부른다. 아차산에 있는 최고봉(最高峰)으로 아차산공원, 용마폭포공원 등이 있으며 수도권 지하철 7호선 용마산역의 역명(驛名)과 용마터널의 이름도 이 산에서 본 따왔다. 용마랜드라는 놀이공원도 있었지만 용마봉 정상에서는 거리가 꽤 되며(오히려 옆 산인 망우산이 더 가깝다), 2011년에 폐장되어 이후로는 주로 사진 촬영을 하러 온다.
정상의 고도는 해발 348m. 산세가 험하지 않고 능선에는 길이 나 있어서 80년대 이후에는 공원화되어 주민들이 산책로로 쓰이고 있다. 다만 정상까지 오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용마봉의 동쪽 사면은 상당히 경사가 급하고, 정상까지는 길이 거의 없으며 그 일부분은 국내에 매우 드문 지형인 암석 폭포 (너덜겅. 암쇄류)가 형성되어 있고 꽤 위험하다.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남산 등 서울 내에 위치한 비슷한 높이의 다른 산들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고 오르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그리고 봉우리 바로 아래 동쪽 사면 중턱에는 동굴이 하나(입구는 두 개) 있으며, 70년대까지는 거기서 서식하는 박쥐가 면목동 주택가까지 밤에 날아오기도 하였다. (천연 동굴이라고 한다.) 산토끼도 살고 있고, 산 규모가 작은 데 비해 의외로 야생 동물은 꽤 있는 편이다.
1960년대부터 용마봉 서쪽 산자락을 발파해 자갈로 만들어 콜타르와 섞어 아스팔트 콘크리트를 만드는 역청사업소가 위치해 발파음과 냄새, 먼지로 주민에게 큰 고통을 주었는데, 결국 폐쇄되었다. 발파해서 없어진 부분은 용마봉 서쪽 사면의 약 1/3에 달하며, 3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이 지나 나무가 자라고 흙이 덮혀 자연 절벽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현재의 용마폭포가 있는 공원 구역이 역청사업소의 흔적이다, 사업소가 존재하던 당시 산 아래로 직선 거리로 2km정도 떨어진 중곡초등학교(사업소 존재 당시 국민학교)에서는 매일 역청사업소의 폭약 발파음을 들으며 수업을 해야 했다.
2018년 7월 용마산 용마폭포공원에서 멸종 위기 1급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발견됐다. 서울에서 산양이 보인 건 최초다. 그 외에 여기서 북쪽(지도상)으로 이동시 망우산과도 연계된다. (나무위키)
[망우산(忘憂山)]
망우동과 면목동,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있는 망우산은 해발 281.7m이며 망우산 일대에는 서울시립장묘사업소 망우묘지가 있다. 이곳이 공동묘지로 지정된 것은 1933년 5월 27일 경기도의 임야 일부를 경성부에서 양도받아 공동묘지로 사용하게 되면서 부터이다. 현재 서울시 안에 있는 유일한 공동묘지로 총면적 490,884평에 약 28,500기의 분묘가 있으며 1973년 3월 25일 봉분이 가득차 더 이상 묘지 쓰는 것이 금지된 이후 현재는 이장과 납골을 장려하면서 2013년 5.30기준 9,350기로 앞으로도 계속해서 줄어들 전망이다. 망우리공원에서는 우리나라 어린이운동의 효시인 방정환,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인 오세창, 한용운, 천연두 보급의 건구자로 의학자 이며 국어학자인 지석영, 임시정부 내무부서기를 역임한 문명원, 동아일보 주필과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했던 장덕수, 제헌국회의원 이며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 등의 묘소가 있으며, 이들 일곱 분의 유명인사 연보비가 공원내 산책로 조성과 함께 지난 97년 2월에 설치되었으며 이어서 98년 2월에 시인 박인환, 문일평, 서병호, 서옹일, 오재영, 서광조, 유상규, 교육가 오긍선 등 여덟 분의 변보비가 추가로 설치되어 역사의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독립운동가 김정규, 화가 이중섭, 소설가 계용묵, 김말봉, 김이석, 최학송, 작곡가 채동선, 언론인 설의식, 정치인 이병홍, 가수 차중락, 친한 일본인 아사가와 다쿠미, 조선시대 순조의 첫째 딸인 명온 공주 등이 안장되어 있음이 최근에 밝혀졌다. 또한 망우동 산 57-1번지 일대 망우리공원 내의 순환도로 5.2km를 아스콘 포장하여 산책로를 만들었으며 산책로의 이름을 공모하여 98년 5월 ‘사색의 길’로 정하고, 도시환경과 자연관찰로, 종합안내판, 나무정자, 약수터 등이 새로이 설치되어 구민의 휴식 및 자연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중랑구청 사이트)
2. 아차산・용마산・망우산 산행의 의미
아차산은 2020년 2월 22일(넷째 주), 8월 29일(다섯째 주) 2회에 걸쳐 다녀온 적 있었다. 봄과 여름에 이어 이번에는 겨울의 아차산을 찾게 되었다. 이번 산행으로 2020년에는 아차산의 여름과 겨울의 맛과 멋을 모두 누리게 되는 특별한 산행이 되었다.
서울은 북으로 북한산이, 남으로는 관악산이, 동으로는 아차산이 있어 서울시민의 건강과 힐링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산이다. 북한산과 관악산 못 지 않게 아차산도 서울시민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고, 서울 한강의 상류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산이기에 더욱 사랑 받는 곳이기도 하다. 아차산에서 바라본 한강 동쪽의 절경은 문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신년 초하루의 아차산 ‘해맞이명소’는 매년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아차산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회원은 이정수 감사이시기에 이번 아차산 산행의 안내자로 부탁을 드리니 흔쾌히 승낙해 주시어 감사한 마음에 존경까지 겸해 전해온다.
3. 아차산・용마산・망우산 산행기
2020년에 들어서 2회의 아차산 산행에서는 묘하게도 본인은 모두 참석하지 못하여 항상 가고 싶었던 산 중에 하나였다. 이번 아차산 산행은 2020년의 3번째이자 마지막 기회이므로 꼭 참석하고 싶었다. 이번 산행에 꼭 참석하고자 사전 작업으로 와이프에게 평소보다 더 다정하게 다가갔으며 집안 청소도 미리 해 놓기도 하였다. 와이프는 이번 아차산 산행에 대해 “위험한 산이 아니냐?”며 묻기만 하고 조심해 다녀오란다. 즐거운 마음으로 아차산역 2번 출입구에 도착하니 최태경 고문, 이정일 고문, 이정수 감사, 오상환 부회장께서 여유로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계신다. 부길만 부회장은 1시 3분 경에 도착하신다는 연락이 왔기에 잠시 기다리니 약속된 시간에 오신다. 이렇게 모두 6분이 이번 주 산행의 동행자가 되었다.
정각 오후 1시 3분, 부길만 부회장이 도착하자마자 바로 아차산 입구로 향해 출발하였다. 아차산 입구까지는 찻길과 일반 주거지를 거쳐야만 하였다. 입구로 가던 길에 부길만 부회장은 점심을 걸렸다며 떡을 구매하였다.
오후 1시 24분, 아차산 입구에 도착하니 아차산 비석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으며, 종합안내도로 등산객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 잠시 등산복과 등산화를 점검하고 오늘의 산행코스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오후 1시 30분, 아차산 산행의 들머리에 들어선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차산역에서부터 이곳까지 천천히 걸었지만 몸이 달아올라 더위를 느끼기 시작했다.
오후 1시 40분, 아차산성 망대지에 도착하였다. 관람객을 위해 안내도를 설치해놓고 사진으로 자세히 설명해 놓아
광진구에서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인다.
오후 2시 정각, 한강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한강의 절경이 한 눈에 펼쳐져 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사진으로 인증해 놓기도 하였다.
오후 2시 10분, 범굴사 및 아차산 4보루로 향하는 데코 계단길이 나온다. 계단길을 오르면서 숨이 가빠지려던 순간 어느새 데코 계단길 정상에 도착하였다. 시간을 보니 약 3분 가량의 오르막 계단길이었다. 아차산에서의 역사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인 “온달장군과 평강공주”를 재미있게 읽고 지나간다.
오후 2시 18분, 범굴사(구 대성암)에 도착하였다. 아니라 다를까 코로나19로 인하여 입장이 불가하였다. 아쉽지만 한강의 전경을 보니 아름다워 이것으로 대신 만족해야 했다. 이곳에서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는 찍어 놓은 사진으로 대신한다.
오후 2시 48분,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 최적의 장소인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바라본 한강은 바로 내 눈앞에 있어 한 손으로 잡힐 듯 하여 휘저어 보았다.
오후 2시 59분, 3시 1분에는 관리사무소까지 2000m, 2200m인 이정표를 만난다. 북한산이나 관악산 그리고 서울의 근교 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정표였다. 이곳 아차산은 경찰이 순찰하는 구역이라는 작은 안내판도 붙여져 있다. 아마도 마을주민과 매우 가깝게 위치해 있어 범죄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려는 경찰의 노력이 덧보이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오루 3시 2분, 아차산 4보루에 도착하였다. 보루의 의미와 역할을 최적화한 곳에 위치해 있어 군사적 요충지임을 알게 하였다.
문화재청의 사이트에 아차산 일대 보루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고 있다.
아차산일대보루군은 출토유물이나 축성방법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보이며, 고구려가 5세기 후반에 한강 유역을 진압한 후 551년에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유역을 상실하기까지의 역사를 밝혀줄 수 있는 유적이다.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중랑천과 아차산, 용마산 일대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여기에 존재하는 10여개의 보루는 현재 남한 내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고구려 관련유적으로서 발굴 등을 통해 고구려 군사시설의 면모가 규명되고 있으며, 백제나 신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자료가 부족하여 그동안 연구 활동이 부진했던 고구려 관련 고고학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삼국시대 특히 고구려 국경지대 요새의 구조와 성격, 국경방위체계, 군 편제 등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 자료로서 고구려의 남하과정, 한강유역에서의 대치와 관리방식, 한강을 둘러싼 삼국의 각축과 발전과정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3,04550000,11&pageNo=1_1_1_0)
오후 3시 12분, 17분에는 관리사무소까지 2400m, 2600m 이정표를 지난다.
오후 3시 22분, 아차산 제2 헬기장에 도착했다. 이곳에 도착하니 다른 산과 다르게 구급함이 구비되어 있었다. 안은 보지 않았지만 구급약품이 있으리라 믿고 싶다. 구리시에서는 구리둘레길을 조성하면서 유명한 시인의 시비도 함께 설치해 놓은 듯 하다. 박재삼 시인의 “자연”이란 시를 읽고 잠시 감상에 젖어보기도 했다.
아차산 4보루에서 잠시 통화하느냐 선두와 잠시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제2 헬기장으로 가는 길은 언덕이어서 데코 계단길이었다. 거의 뛰다 시피하여 선두를 향해 빠를 걸음으로 올라갔지만 선두를 만날 수 없었다. 용마산 정상으로 향할 것으로 판단하고 용마산 정상을 향해 가다보니 관리사무소까지 2800m, 3000m인 이정표를 지났다. 그리고 아차산 제3 헬기장도 지났다. 제3 헬기장에도 구리시에서 설치해 놓은 안도현의 “우리가 눈발이라면” 시비를 보았다. 하지만 선두를 만나야하기 때문에 사진만 찍고 그냥 지나쳐야 했다.
용마산 정상을 약 100m 앞두고 오상환 부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길이 엇갈려 내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신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선두는 제2 헬기장에서 나를 기다렸는데 나는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용원역 방향으로 가려면 용마산 정상 방향이 아닌 망우산 정상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제2 헬기장에서 선두를 만나 망우산 방향으로 출발하였다.
오후 3시 38분, 용마산 5보루에 도착하였다. 용마산 5보루 설명 안내판은 용마산 방향에 1개 망우산 방향에 1개 등 모두 2개를 설치해 놓아 어느 방향에서 오르던 안내판을 잘 볼 수 있도록 조치해 놓았다. 그리고 이곳에서부터 망우리에 포함되는지 구리시는 “망우리의 유래”에 안내판으로 설명해 놓았다. 용마산에서 망우산으로 향하는 능선 길은 흙길이어서 발걸음이 상쾌하게 느껴지기에 충분하였다.
오후 3시 41분, 용마산 깔딱고개의 정상에 섯다. 안내판을 보니 계단이 570개란다. 난 내려가는 코스이기에 부담이 없지만 올라오는 방향에서는 여러 번 쉬면서 올라와야 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깔딱고개라고 칭하였던 것 같다. 이 계단길은 약 6분에 걸쳐 내려왔다. 내려오던 중간에 “용마산에서 바라본 서울” 동쪽 방향인 한강과 서쪽 방향인 중랑구 등을 사진 설명도를 설치하고 쉼터도 함께 만들어 놓았다. 이 깔딱고개를 내려오면 용마산 영역이 끝나고 망우산 영역으로 접어든다.
오후 3시 57분, 망우산 1보루에 도착하였다. 이곳의 안내도도 용마산 방향과 망우산 방향 모두에 설치해 놓아 어느 방향에서 올라오던지 알기 쉽게 하였다.
오후 4시 8분, 동락정에서 휴식을 취한다. 어느덧 약 3시간의 산행이었다. 갈증은 생수로 의지하고 체력의 고갈은 간식으로 충전한다. 약 10분 간의 휴식은 심신의 여유로움을 더해 주었을 뿐 아니라 재미있는 한담으로 소소한 행복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오후 4시 27분, 망우산 2보루에 도착한다. 이곳에는 새롭게 데코를 설치해 놓아 서울의 전경을 바라보기에 수월하게 해 놓았다.
오후 4시 33분, 망우산 3보루에 도착한다.
오후 4시 37분, 역사의 전망대에 도착한다.
오후 4시 45분, 망우산 보루에서 아스팔트 길로 내려섰다. 이 길부터 관리사무소까지는 아스팔트 길이었다. 이곳에 도착하면서 망우산의 산행은 실질적으로 끝났다. 관리사무소까지 내려가면서 여기에 묻히신 유명 인사와 지사들에게 경건한 속마음으로 묵념하며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했다. 관리사무소까지는 0.7km라는 이정표가 있다.
오후 4시 54분, 망우리 관리사무소에 도착하고 최태경 고문을 만났다. 아차산 4보루에서 잠시 헤어졌던 최고문님을 다시 만나 마지막 구간을 함께 하였다.
오후 5시 정각, 관리사무소에서 양원역으로 향하는 방향에 남산의 모습이 저녁노을로 인하여 환상적으로 보여 얼른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
오후 5시 11분, 망우리고개길을 건너고 다시 작은 뒷동산을 거쳐 쉼터에 도착하여 이정일 고문께서 준비해 오신 떡으로 허기를 달랜다. 오늘 이정수 안내자께서 유난히도 허기를 느끼시는 듯 평소와 다르게 간식을 요청하신다. 떡본 김에 휴식까지 취하니 표정이 더욱 밝아진다.
오후 5시 19분, 양원역이 코 앞에 보이고, 22분에는 망우산 날머리에 도착하였으며, 24분에는 석식할 장소인 ‘남한강 물고기’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 식당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입장하신 고객에게 핸드폰 번호를 적게 하여 내가 대표로 적어 놓았다. 다행히도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은 고객이 한 분도 없어 매우 안심하고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우리가 거의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쯤에는 고객 2팀이 들어왔지만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아 그 팀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번 주 산행은 마치 서울 동쪽 산인 아차산・용마산・망우산을 종주하는 느낌이었다. 이들 산에도 평소에는 많은 인파가 몰리는 산이었다. 이정수 감사님은 많은 등산객이 다니지 않고 아름다운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코스로 안내하여 만족지수는 최고조에 달했다. 안내자의 수고로움에 감사의 말씀을 한 번 더 드리고 싶다.
이정수 감사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한 산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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